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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맹영일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저널정보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고전과 해석 고전과 해석 제29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75 - 10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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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전환하는데 전통문화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용인시에 대한 대표적인 이미지는 “生居鎭川 死居龍仁”이다. 용인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부정적인 죽음과 연결된다. 이러한 용인의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으나, 실제 효과는 미미하였다. 본고에서는 용인지역의 서원을 통해 용인이라는 지역이 가지는 교육적 이미지를 살펴보았다. 특히 일반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후기 노론계의 대표적 문인・학자였던 이재와, 그가 활동했던 한천정사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콘텐츠를 통해 한 지역의 이미지를 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였다. 용인 지역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문화콘텐츠 중의 하나가 교육이다. 용인의 대표적인 문화콘텐츠 중의 하나가 정몽주의 묘와 조광조의 묘이다. 지금까지는 선현의 추숭이라는 유교적 정서로 인해 묘에 초점이 맞춰져 묘와 함께 있는 서원의 존재는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역할이 한정되었다. 서원은 선현에 대한 奉事와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는 곳이다. 서원은 용인이 지니고 있는 기존의 죽음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 대신 교육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용인지역에는 널리 알려진 심곡서원과 충렬서원 말고도 이재의 한천서원이 있었다. 이재는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문인・학자로, 특히 노론계열의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재가 말년의 20여년 기간동안 많은 저술을 남기고, 제자들을 교육시켰던 곳이 용인의 한천동이었다. 이재가 살았을 당시에는 한천정사였다가 이재 사후 한천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이재는 한천정사를 중심으로 노론 낙론계의 학문을 강론하였고, 이를 배우기 위해 기호지역의 생도들이 모여들었다. 이재는 이 과정에서 엄격한 규정을 두어 생도들의 학술과 생활을 조직하였다. 특히 강학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는데, 용인지역에서 강학이 이루어지던 주요한 곳이 한천정사와, 용인향숙, 충렬서원, 심곡서원이었다. 이재는 각 마을에서 이루어진 강회가 서원과 연계되도록 하였다. 이는 서원의 건립 목적이 강학에 있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강학의 전통을 보여주는 용인지역의 서원은 용인의 브랜드를 교육도시로 바꾸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충렬서원에서는 ‘포은문화제’를 대표적인 축제로 발전시켰으며, 심곡서원도 문화탐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용인 지역의 서원이 하나의 브랜드로 묶이지 못하고 각자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본고에서 언급한 한천서원을 포함하여 충렬서원, 심곡서원을 연계하여 교육도시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용인이라는 지역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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