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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재훈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서원학회 한국서원학보 한국서원학보 제16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41 - 66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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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대표하는 서원 가운데 하나인 龍山書院은 여러 면에서 다른 서원과는 특징적인 면모가 있다. 崔震立이라는 武人을 제향하였으면서도 사액을 받았다. 1699년 忠烈祠라는 祠宇로서 건립되고, 1711년 崇烈祠宇로 사액을 받은 과정은 역시 대명의리와 존주대의가 강조되었던 숙종대의 분위기 속에서 가능하였다. 용산서원은 기존의 西嶽書院이나 玉山書院이 재지사족을 중심으로 남인 위주의 색채가 강했던 반면에 당색에 얽매이지 않고 이를 넘어서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사우를 서원으로 바꾸려는 시도와도 관련되었는데, 18세기 중반의 어느 시점에 숭렬사우에서 숭렬서원으로, 다시 숭렬서원에서 용산서원으로 변신하면서 용산서원은 서원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18세기 중반에 용산서원에서는 대규모의 居接을 시행하는 등 강학 관련 행사를 시행하였다. 옥산서원이 거접을 중단하였던 것을 이어서 18세기 후반에 거접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면서 경주 지역에서의 교육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용산서원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 기여하였다. 19세기에도 이러한 활동은 이어져서 巡題나 白日場, 考講 등을 자주 개최하였다. 19세기 전반에 활발하게 이루어진 이런 행사는 대체로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성격이 강하였고, 비용의 절감을 위해 거재보다는 하루의 행사에 그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행사에 많은 재정 지원을 함으로써 용산서원은 경주부 남쪽의 대표적인 서원이라는 위상을 확보하게 하였다. 관에서 과거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통보하고 수집하는 대상에 향교와 서악서원, 옥산서원에 더해 용산서원도 추가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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