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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대용 (국민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와교육학회 역사와교육 역사와교육 제36호
발행연도
2023.5
수록면
127 - 15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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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봉우는 중국과 러시아를 넘나들며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평생 민족의식을 잇는 교육활동에도 집념을 보여 많은 활동 이력을 남겼 다. 이 글에서는 그가 국내에서 펼친 초기 교육활동부터 망명 후 북간도에 서 전개한 교육활동과 함께 연해주와 카자흐스탄에서 이어간 민족교육활 동을 살펴보았다. 을사늑약 소식을 접하고 민족적 현실을 깨닫게 된 그는 국권회복의 일 환인 민족교육에 투신하였다. 1906년 영흥에서 홍명학교를 열고 교육활 동을 시작한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독학으로 공부할 정도로 열성 적이었다. 1908년에는 계몽운동 단체에도 참여하였고, 기독교에 입교하 여 영생학교의 교원으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다. 1911년 북간도로 망명한 그는 길동기독학당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간민교육회의 교과서 편찬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재정적 어려움으로 학 교는 3년 만에 폐교되었고, 그는 러시아 연해주로 이동해 활동하다 한인 독 립운동가들에 대한 퇴거명령에 따라 중국 왕청 하마탕으로 옮겨 소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중 일제경찰에 피체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다. 1919년 재망명하여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북간도 대표로 활동하였다. 1920년 사회주의를 수용한 후 연해주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923년부터는 교육과 집필활동에만 매진하여 연해 주의 민족학교에서 그리고 강제 이주 후 카자흐스탄에서 조선어와 조선 역사를 가르치며 마지막까지 교육자로 살았다. 당시 그는 소비에트 사회 체제 내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순응하여 사회주의 교육을 강화하려 는 정책을 받아들이면서도 고려인에 대한 민족교육의 선행과 확대의 필 요성을 역설하는 등 민족주의 교육자로의 집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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