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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종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69집
발행연도
2020.2
수록면
49 - 7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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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섭은 1920~30년대 부여지역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척사유림의 집안에서 성장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웠다. 그는 1920년대 중반 청년단체 참여를 시작으로 독립운동에 뛰어 들었고, 학생들의 문맹 타파와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교육에 주력하였다. 자신도 현실인식과 민족의식을 심화시키며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였다. 1920년대 그는 민족의식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자로서 변모하였다.
1930년대 그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과 일제의 탄압 속에서 비밀결사의 결성과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1931년 사회주의 사상의 연구와 선전을 지향하는 단체를 조직한 데 이어 비밀결사 화성당의 결성을 추진하였다. 이 활동으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지역 주요 활동가들과 비밀결사 공산주의자협의회를 조직하여 농민과 청소년에게 사회주의를 선전하며 혁명적 대중운동을 벌였다. 이 활동으로 다시 실형을 언도받아 투옥되었다. 그는 옥고를 치르던 중 1936년 31세의 젊은 나이로 옥중 순국하였다. 그의 활동 기간 10년은 부여지역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시기였고, 그 중심에 그가 있었다.
그의 독립운동은 대의명분을 중요시하고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척사유림의 집안 환경을 토양으로 출발하였다. 식민지 현실을 직시하며 민족의식을 키웠으며, 이 과정에서 다방면의 지식을 습득하고 식견을 높이는 신지식인으로 거듭났다. 또한 사회운동을 통해 민중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고 사회해방의 신념을 키웠다. 그의 신념은 거듭된 활동 속에서 더욱 확고해졌으며, 이는 일부 활동가들이 위기의 순간에 드러낸 타협적 자세와는 달리 불의와의 타협을 일체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민족독립과 사회해방을 위해 한 순간의 주저 없이 헌신하며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목차

1. 머리말
2. 家系와 1920년대 청년운동
3. 1930년대 비밀결사 활동과 혁명적 대중운동
4.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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