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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어강석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31권
발행연도
2023.4
수록면
29 - 62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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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야은 길재의 시와 조선시대 문인들이 지은 시를 통해 야은의 행적과 후대의 평가 양상을 살펴보았다. 야은은 신왕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초야로 은거하여 부모에 효성을 다하고, 후학을 길러 성인(聖人)의 학문을 진작시키는 행적을 남겼다. 야은은 이미 고려의 운명을 짐작하고 백이와 숙제처럼 절의를 지키는 인물이 되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었다. 야은의 행적을 찬미하는 시를 짓기 시작한 것은 구암 남재가 두 개의 시축을 만들면서부터이다. 남재의 시에 양촌 권근, 춘정 변계량, 호정 하륜, 율정 박서생, 교은 정이오 등 당대의 문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차운시를 남기고 있다. 이들은 야은의 절의를 시로 읊으면서 백이·숙제와 엄자릉의 행적에 비견하고 있다. 백이·숙제의 수양산을 금오산에, 엄자릉의 칠리탄을 봉계(鳳溪)에 비견하여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뜻을 굽히지 않은 야은의 모습을 찬미하였다. 그러나 야은의 행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각도 존재하였다. 야은의 명성은 조선의 밝은 임금이 큰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하면서, 이렇게 밝은 임금이 있는 조선의 조정에 나오지 않았던 야은의 행적을 은근히 비난하였다. 또한 유자의 임무는 요순과 같은 임금이 될 수 있도록 잘 보필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야은은 유자로서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은거하여 이름만 높였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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