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안세현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한문고전학회 漢文古典硏究 漢文古典硏究 제46권 제1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127 - 152 (2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조선후기에 전개된 壯節公 申崇謙(?~927)에 대한 추숭 사업의 양상을 정리하고 신숭겸의 위상 변화와 그 배경을 고찰하였다. 신숭겸은 고려 태조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고 팔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대신 하여 장렬하게 전사한 무장이었다. 신숭겸은 고려의 개국 공신이자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이에 신숭겸은 고려시대에 태조 왕건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조선시대에도 고려 태조와 함께 崇義殿에 배향되었다. 특히 조선후기에 출생지인 전라도 곡성에 德陽書院이, 본관인 황해도 평산에東陽書院이, 전사한 경북 대구에 表忠祠와 忠烈碑가, 묘소인 강원도 춘천에 道浦書院이 건립되는 등, 여러 지역에서 신숭겸 추숭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는 조선후기 전국적으로 서원이 급격하게 설립되었던 상황에 따른 것이었다. 이러한 추숭 사업의 과정에서 신숭겸은 뛰어난 무예를 지닌 무장에서 문무를 겸비한 절의지사로, 삼한통일에 기여한 공신에서 유교문화의 수호자로 위상에 변화가 일어났다. 서원에 모실 수 있는 적합한 인물로서 신숭겸의 文德을 강조하고 유교문화의 수호자로 신숭겸의 위상을 재정립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신숭겸의 위상 변화에는 임병양란 이후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해야 할 절의지사의 필요성과 함께, 조선후기 사회에 팽배하였던 소중화 의식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