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순모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백제연구 제77호
발행연도
2023.2
수록면
159 - 185 (2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唐 玄宗은 불교 통제를 강화하여 전국적으로 동일 명칭의 開元寺와 龍興寺 두 官寺를 설립하였고, 각각 자신의 생일과 조상 추복을 위한 國忌日 행사를 거행하게 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황제가 불교를 완전히 통제했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 논문은 龍興寺가 황실 조상을 추복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던 경위를 탐구하기 위해, 당초부터 조상 추복을 위해 설립한 陵寺와 功德寺의 실상을 검토하고자 한 것이다. 唐 皇室은 조상으로 老子를 존숭하였고 비록 武則天시기 불교가 일시 우위에 있었어도 道先佛後 정책이 기본 방침이었다. 이 때문에 陵寺의 건립은 크게 제약받았고 隋의 능사 건립 관례를 계승하기 어려웠다. 다만 불교가 사회 저변에 폭넓게 신봉되었던 현실을 배경으로 황제는 정치적 동기나 葬祭 관례, 혹은 개인적 신앙과 효심에 기인해 능사를 건립하였다. 昭陵 역내의 瑤臺寺와 寺名을 알 수 없는 최소 한 곳 이상, 延光陵・建昌陵의 光業寺 등이 그 사례라 할 수 있다. 황제와 황실 구성원의 추복을 위한 功德寺는 長安城을 중심으로 다수 설립되었다. 추복의 대상은 高祖・太宗・高宗・武則天 4명의 황제를 찾아볼 수 있고, 황실 구성원은 皇后・王子・公主 등이었다. 공덕사의 설립 시기는 대부분 玄宗 이전에 집중되었고 그 이후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는 官僚士人들이 無爲 등을 논거로 사원 건립으로 야기될 인력 동원과 재정적 폐해를 지속적으로 지적한 것과 더불어 玄宗의 佛敎 통제에 따른 결과였다. 특히 兩京지역은 龍興寺에서 國忌日 행사를 거행하게 함으로써 功德寺의 추가적 설립을 최대한 억제하였다. 龍興寺에서 국기일 행사를 거행한 것은 분명 황제권의 선양과 불교를 통제했던 상징적 조치였다. 단지 亡者를 추복하는 사원이 증가하고 일상화되었던 현실이 용흥사의 설립이라는 결과로 나타난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禪宗의 발흥으로 불교가 중국사회에 완전히 뿌리내리게 되면서 宋代에 이르러 불교는 완전히 중국문화로 융화되었고 자연히 陵寺와 功德寺도 다수 건립되었다. 이런 점에서 唐宋변혁을 불교에서 유교 중심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라는 인식은 재고해야 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