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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미애 (가톨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11호
발행연도
2023.9
수록면
263 - 301 (39page)
DOI
10.37331/JKAH.2023.9.111.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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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동성왕의 즉위 배경과 즉위 후 정국 운영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동성왕 시해 사건과 苩加에 의한 반란의 의미에 대해 재검토해 보고자 하였다. 한성의 함락 이후 웅진으로 천도를 단행한 문주왕은 倭에 체류 중이던 곤지를 불러들이는 한편 아들인 삼근을 태자로 책봉하며 정국을 시킴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때 문주왕에 의해 內臣佐平에 임명된 곤지는 개로왕 대에 征虜將軍 左賢王에 책봉되었으며, 이후 왜에 파견되어 왜에 이주해 있던 백제인들을 통합하고 왜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곤지의 귀국은 문주왕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으며, 곤지는 내신좌평에 임명된 후 사망하기 전까지 다양한 정치 세력과 왕실 세력을 규합하는 책임자로서 활동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곤지의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규합된 세력들은 이후 동성왕이 즉위하는 과정에서 지지 기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동성왕 전반기 對고구려전의 전개와 북방을 중심으로 한 관방의 정비 등은 이들 세력에 의해 추진된 정책 방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성왕은 재위 11년 만에 天地제사를 지내고 南堂에서 연회를 베풀면서 정국 운영 방향의 一新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사비로의 전렵이나 耽羅에 대한 정벌을 내세운 무진주로의 幸行은 백제의 관심이 북방보다는 남방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사비로의 전렵은 사비로의 천도를 염두에 둔 행위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동성왕 후반기 정국 운영 방향의 변화는 정치 세력 구도에도 변화를 가져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동성왕 전반기에 활동했던 정치 세력들의 위기의식을 불러왔으며, 그것이 결국 동성왕 시해 시도로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동성왕 시해의 중심인물로 『삼국사기』에서는 苩加를 지목하고 있으나 동성왕 대 전체를 걸쳐 최측근으로써 활동했던 백가가 동성왕을 시해하고자 한 뚜렷한 목적이 찾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동성왕 시해 시도 이후 가림성에서 머물렀으며, 무령왕 즉위 후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항복하는 등의 백가의 행적은 그가 동성왕을 시해한 것이 아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일본서기』에서는 ‘國人’에 의해 동성왕에 대한 시해 모의가 있었으며, 백가는 그들에 의해 범인으로 지목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 ‘國人’은 동성왕 전반기 세력들로 볼 수 있다. 백가의 난이 일어난 후 ‘國人’ 세력은 백가의 항복에도 불구하고 그를 제거함으로써 추후 일어날 수 있는 시해 사건을 둘러싼 진실 공방에 대한 문제의 소지를 없애는 동시에 ‘국왕 시해자 백가’를 처단했다는 명분을 통해 정권 교체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으로 생각한다.

목차

국문 초록
I. 머리말
II. 東城王의 즉위 배경
III. 東城王의 정국 운영과 苩加의 난
I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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