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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욱진 (아산시청)
저널정보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백제문화 제1권 제53호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5 - 26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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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의 아들인 무령왕(사마)은 곤지가 왜국으로 향하던 도중 태어나 곤지의 뜻에 따라 백제로 보내졌다. 백제에 머물고 있던 사마는 곤지가 왜국에서 귀국하자 곤지를 도와 정국에 참여하게 되었다. 곤지는 사마 그리고 귀국시 함께 한 세력 등과 더불어(곤지계) 문주왕을 도와 해구를 중심으로 한 세력을 견제하였지만, 결국 제거되고 말았다. 곤지의 사후 사마는 곤지계를 이끌며, 반해구세력의 구성세력으로서 참여하였다. 그리고 반 해구세력은 결국 해구를 중심으로 한 세력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이후 왕위를 놓고 문주계와의 정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왜국에서 들어온 이모제인 모대가 진씨 등의 지지를 받게 되자 결국 왕위를 양보할 수 밖에 없었다. 동성왕은 즉위 이후 경쟁자였던 사마를 정국운영과정에서배제하고 다양한 세력의 참여 속에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아갔다. 하지만, 동성왕이 왕권강화를 위하여 정국운영을 측근중심으로 재편하면서 내부의 혼란이 일어나자 이를 기회로 사마는 동성왕을 제거함으로써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정변을 통해 동성왕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무령왕은 친 동성왕계였던 백가를 반역이라는 이유로 제거함으로써 반대세력을 숙청하였다. 또한, 왕실의 권위 회복 및 외부와의 긴장관계를 통해 내부의 정비를 꾀하고자 고구려와의 전쟁을 개시하였다. 무령왕은 이를 통해 정국 초기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으며, 다양한 개혁을 실시할 수 있었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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