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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복희 (중앙승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불교사연구소 한국불교사연구 한국불교사연구 제9호
발행연도
2016.6
수록면
101 - 13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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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기의 미륵정토에 대한 문헌기록은 없다. 그럼에도 그의 미륵정토를 규명할 수 있는 점은 몇 가지가 있다. 행기가 건립한 ‘49원’과 도소와의 관계, 나아가 유가종과의 관계 등이다. 행기의 49원은 도솔천의 궁전이 49겹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하는 『미륵상생경』과 관련성이 깊다. 『화엄경』에서도 도솔궁은 설하고 있지만, 49겹에 관한 설명은 없기 때문에 화엄사상과는 관련성이 희박하다. 행기의 스승인 도소는 당나라에서 현장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현장은 미륵정토 왕생발원자였다. 때문에, 현장의 미륵정토사상이 도소를 통하여 행기에게도 전승되었을 것이라는 논지의 전개가 가능하였다. 행기집단은 걸식을 기본으로 하였는데, 이는 자신들만의 경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중생의 고난을 해소하고 이익을 주기 위해서는 자신의 것이 없으면, 억지로라도 ‘찾아서 구하여 주어야 한다’는 『瑜伽師地論』의 가르침을 실천한 것으로 이해된다. 당시, 三世一身法으로 인하여 과중한 과세와 부역 때문에 힘든 민중들을 위하여 음식과 의복 등의 남은 물건들을 탁발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행기와 원효의 관계성에 관하여 간단히 살펴보았다. 원효가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미륵신앙자들을 구분한 것은, 행기의 유가유식의 미륵정토와는 사상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미륵사상과 관련해서는 행기가 원효에게 간접적으로라도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헌기록이 없는 행기의 미륵정토사상을 연구하는 것은 많은 문제점이 남아있다. 현재는 야마다 분쇼(山田文昭)가 말한 “행기가 유가종에 속한 이상, 서방왕생 발원자라는 관점보다는, 오히려 도솔상생 발원이어야 한다. 당시는 중국의 현장과 자은이 입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도솔사상이 왕성하게 유행하고 있었으며, 일본에도 법상종의 전래와 함께 전래되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도소도 서방왕생 발원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주장도 하지만, 행기의 미래사상을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는 견해를 수용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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