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日本思想 제28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95 - 137 (43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에서는 근대기에 들어 신라시대의 인물인 元曉(617-686)의 사상과 행적에 새롭게 주목한 인물을 소개하고, 그들의‘원효 재발견’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일본유학을 경험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당시 일본과의 관계를 의식하며 원효에 관심을 쏟게 된 배경, 그리고 그 결과로 그려진 원효상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원효는 동아시아불교계에 널리 알려졌던 인물로, 그의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등이 널리 애독되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효는 문도형성이나 교단조직과 같은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숭유억불의 조선시대를 지나오며 그 존재감은 많이 잊혀지게 되었다. 점차 名刹 창건 설화속의 신비승의 이미지가 많이 남아 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를 맞게 되며 상황은 달라진다. 한국불교계의 억불으로부터의 해방, 일본불교계와의 교섭, 서양종교와의 경쟁 등의 배경 속에서 원효는 급격히 주목을 받으며 재평가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당시의 원효인식은 불교교리나 신앙의 측면보다는 일본의 식민지배하에서의 ‘국가존립, 민족 주체성 문제’와 결부된 측면이 크다. 원효는 역사로부터 불려져 나와 당시의 국가와 불교계의 정세에 맞추어 해석되어졌는데, 그 양상은 ‘민족영웅, 개혁가, 통불교의 제창자, 군승, 호국승, 선교융합의 이념적 종조’ 등의 표상으로 나타났다. 즉 원효는 근대를 기점으로 ‘불교의 진리를 체득한 고승’이기 보다는 ‘한국민족사상과 문화의 자부심의 상징’으로서 재등장 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본 고에서는 근대기 원효 재발견의 역사적 배경을 당시의 한일 양국의 관계와 불교계의 교섭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고자 하였다. 특히 정황진, 최남선, 조명기, 허영호를 중심으로 각각의 원효 재발견의 배경과 양상에 대해 고찰을 시도하였다. 이들의 원효이해에는 식민통치국가로 등장한 일본에 대한 일종의 저항감과 민족적 자부심의 모색, 그 반면 선진불교국으로 선양하고 있는 당시의 일본불교계에 대한 동경 등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음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고찰을 통해 원효라는 한 인물의 이미지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상황에 의해 다양하게 읽혀 왔으며 재창출되었음 인식하고, 나아가 현대에 있어 우리에게 원효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자문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바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39)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