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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광연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65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09 - 132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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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사회에 9세기 후반부터 말법 인식이 확산되면서 농민들이 구세주 미륵을 갈망하며 반란을 일으켰고, 그 결과 신라는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이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 불교 교단에 대한 탄압에서 비롯했던 말법 인식이, 9세기 신라에서는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확산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과연 ‘말법 인식→농민 반란→미륵 갈구’의 연결고리가 신라 멸망의 원인을 설명하는 타당한 논리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신라 사회에 불교의 말법 인식이 존재했음을 부정하는 견해도 있지만, 9세기 중반부터 불교계에서 석가불의 입멸을 기준으로 연도를 헤아리고 상말(像末) 등 불교 시간관을 드러내는 표현들을 사용한 것은 분명하다. 이 표현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우선 840-860년대에는, <보림사불상>을 제외하고, 신라 동북방 지역에서 만든 승탑 및 철불(鐵佛)에서만 관련 사례들이 보인다. 둘째, 870-960년의 1백년 간 전국에 산재한 선사들의 탑비에서 확인된다. 고구려, 말갈, 발해 등과 경계를 이루던 동북방 지역에는 8세기 중엽까지도 충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험준한 산들이 많고 바다가 가까운 지형적 특성에서 비롯된 위기의식도 항상 공존하였다. 이 지역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9세기 이후인데, 동북방 지역에서의 불교의 수용과 말법 인식의 등장이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신라 사회에서 말법 인식은 동북방 지역에서 시작하였고, 이후 선종 승려들이 지방 사회에 정착하면서 말법 인식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선종 승려들은 국왕 및 세력가들의 비호 아래 교세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말법의 시간을 전륜성왕의 통치와 미륵불의 하생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강조하였다. 신라 하대에 불교계나 정치계에서 말법 인식을 교화나 통치에 활용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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