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기훈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연세사학연구회 학림 학림 제48권
발행연도
2021.9
수록면
41 - 80 (4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3선 개헌 이후 박정희 정권은 영구집권을 모색하며 사회적 저항을 약화시키는 것에 주력하고 있었다. 대학과 학생운동을 통제하기 위해 정권은 군사교육인 교련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현역 군인을 교관으로 배치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학생운동은 민주화의 보루로서 학원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교련반대 투쟁을 맹렬히 전개했다. 1970년 말부터 1971년 연세대 학생운동도 다른 대학 운동과 연대하여 대규모 집회와 시위, 단식농성을 전개하며 교련반대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정권이 위수령을 발동하여 대학을 휴교시키고 학생운동 주도자들을 강제 입영시키며 저항을 무산시켰다. 이후 1972년 10월 유신체제가 성립하자 학생운동은 각 대학을 연대하여 조직적인 반유신 운동을 시도하였는데, 1974년 민청학련이 대표적인 사례다. 연세대 학생들도 민청학련의 조직과 활동에 참여하다 구속되었다. 연세대학은 1974년 하반기부터 교수, 학생과 대학 당국이 모두 참여하는 대학 행정 개혁을 추진하여 성과를 거두었다. 이를 바탕으로 1975년 민청학련 사건 관련 교수 학생의 복직, 복교에 대한 정권의 탄압에 대해 대학 공동체가 함께 저항하는 면모를 보였다. 학원 자율성의 수호 이면에서는 학생운동의 새로운 이념과 지향이 성숙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에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의 실현 주체로서 민족-민중을 발견했다. 이는 주체의 확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세계를 해석하는 시야의 확장이었고, 역사와 공간을 민중운동과 변혁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었다. 여전히 실존적 지식인의 상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념적 측면에서 학생운동은 학원을 벗어나 민중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