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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상태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100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29 - 174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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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2월 민족자결주의와 2.8독립선언으로 국내 학생층이 독립운동에 착수했을 때 김형기, 한위건은 경성의전의 학생대표로 참여했다. 특히 한위건은 각 학교 학생대표들의 선정, 학생들만의 2차 시위 제안, 독립선언서 배부 등을 주도하며 당대 학생운동진영의 최고 지도부로 활약했다. 김형기, 유상규, 한위건 등 경성의전의 학년별 대표들은 학생들에게 3.1운동 계획을 전하며 시위 참여를 독려했고, 민족자결주의와 해외의 독립운동에 대해 알고 있던 학생들은 3.1운동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했다. 3월 1일 서울의 1차 시위에 참여한 경성의전 학생은 최소한 28명이었다. 특히 김탁원, 김형기, 최경하 등은 서울 도심에서 시위를 주도했다. 이익종은 군중 앞에서 연설을 통해 독립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3월 5일 2차 시위에는 최소한 5명의 경성의전 학생들이 참여했다. 서울의 1차, 2차 시위는 지방 학생들의 궐기 기세 제고, 농민, 상인, 노동자계층의 시위 참여 등을 촉발함으로써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3~4월 시위 현장이나 하숙집 등에서 체포된 40명의 경성의전 학생 중에서 32명이 공식 공판에 회부되었다. 당시 서울의 학교들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였다. 경성의전 학생 32명 중에는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 학생이 많았으며, 그들을 중심으로 한 ‘하숙 네트워크’는 경성의전 학생들의 3.1운동 참여에 기폭제가 되었다. 경성의전 학생들이 시위에 적극 참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였다. 그들은 조선인들이 독립선언과 만세시위를 통해 독립 의사를 표명하면 세계 열강 또는 일본 정부가 조선 독립을 허용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형원은 일회성 시위만으로는 독립을 얻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주체적 역량에 의한 중장기적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경성의전 학생들이 3.1운동에 참여하게 된 궁극적인 동기는 조선이 독립국이기를 염원하는 마음과 일제의 혹독한 조선 통치, 즉 민족차별과 경제적 수탈 등에 있었다. 3.1운동 당시 경성의전 학생들의 이와 같은 내면과 적극적인 항일운동 참여는 일제강점기 내내 조선인의 희망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선두에서 고민하고 행동했던 학생층의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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