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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경동 (공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69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35 - 86 (5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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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시대 ‘경장(更張)’의 용례와 의미 변천을 통해 경세론의 추이를 분석하고 시기별 변화에 따른 역사성을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경장은 변화 및 개혁을 의미하는 개념으로서, 한대(漢代) 동중서(董仲舒)에 의해 사용된 이래로 동아시아 전체에 걸쳐 폭넓게 사용되었다. 한국사에서 경장은 성리학의 도입과 함께 14세기 후반부터 용례가 확인되는데, 국면의 변환이나 법제의 개수 등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5세기에는 『경국대전』의 편찬과 그 이후의 개수 논의와 관련한 부분에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다. 이는 경장 개념이 법제와 관련한 부분에 국한되어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16세기에는 사림(士林)의 정치적 활동이 증대됨과 동시에 경장의 용례가 점차 증가하였다. 사림들은 동중서를 포함하여 송대 이학자(理學者)인 진덕수(眞德秀), 정호(程顥), 주희(朱熹) 등이 주장했던 견해를 토대로 경장을 구조화하였다. 경장을 활발하게 사용했던 인물은 조광조(趙光祖)였으며, 이후 이이(李珥)에 의해서 체계화되었다. 이이는 시기, 방법, 지향, 주체의 측면에서 경장을 정의하고 그 내용을 구조적으로 밝혔다. 이 시기 정립된 경장 개념은 경세론과 결합되어 이후 전개되는 경장에 대한 활용에 있어 주요한 기준으로 작용하였다. 경장은 17세기 사회개혁정책의 전개와 함께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대동법(大同法)을 포함한 주요 개혁 논의의 담론 속에 경장 개념이 등장한다. 주목할 점은 경장과 함께 경장에 상대되는 ‘준수(遵守)’가 이원적으로 이해되었다는 사실이다. 책문(策問), 상소문, 연설(筵說) 등에서 경장과 준수가 언급되었는데, 당대 국가 운영의 방향과 관련한 인물들 사이의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부터 경장은 탕평론과 결합되며 활용되었다. 영?정조는 경장을 자신이 추진하고자 하였던 개혁정책와 결부하며 경장의 주체로서 군주를 설정하였으며, 스스로 경장의 주인을 자처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18세기 초까지 경장의 주체를 관료로 설정했던 경장관과는 차이가 있다. 19세기에는 삼정(三政) 등 당대 사회문제와 함께 경장의 사용 빈도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경장이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1862년 임술민란을 계기로 제출된 삼정책(三政策)이다. 제출된 삼정책에는 경장을 입론의 당위나 전거로서 제시하고, 삼정문제에 관한 해결방안을 각론으로 제시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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