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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건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숭실사학 제47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233 - 265 (33page)
DOI
https://doi.org/10.16942/ssh.2021.4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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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전쟁기 일본은 남양군도 밀리환초에 조선인들을 군속으로 강제동원하였다. 1942 년 약 800~1,000명의 조선인들이 밀리환초에 동원되었으며, 주로 밀리섬의 비행장 건설과 보수 공사를 담당하였다. 그런데 전황이 악화되고 1944년 6월 이후 보급까지 중단되자 밀리환초는 심각한 식량난에 빠져들었다. 직접 농사를 지어 식량난을 해소하고자 했으나 기후와 토양 문제로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았다. 특히 식수 부족이 심각했는데 빗물을 받아 겨우 생활하는 형편이었다. 설상가상 미군의 공습으로 생활 시설과 숲까지 파괴되자 식량난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군에 의한 잔혹 행위가 벌어졌다. 조선인들은 잔혹 행위가 계속되기 전에 섬을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1945년 3월 1일 새벽 일본군을 제압한 뒤 미군에 투항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각되었고 결국 일본군은 탈출 계획에 참여한 수많은 조선인들이 학살하였다. 일본군이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총살당한 사람이 32명, 자살한 사람은 23명으로 모두 55명이 사망하였다. 미군이 제작한 자료에도 조선인들의 저항과 일본군의 학살 사건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미 해군은 조선인들의 밀리환초 탈출과 이동, 그리고 수용소 생활 등을 모두 촬영하여 남겼다. 이들사진 설명 중에는 193명의 한국인 ‘노예 노동자’가 일본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켰고 이 중 68명이생존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미군은 이들을 ‘노예 노동’에 동원된 사람들로 파악하고 있었다. 밀리환초 조선인 군속들의 저항과 일본군의 학살 사건은 피해자들의 증언과 일본군이 작성한명부, 그리고 미군 측 기록에 의해 대부분 역사적 사실로 규명되었다. 다만 아직도 정확한 피해규모와 개인별 사례 등은 밝혀져야 할 내용이 많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지금도 당시 사망한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유해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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