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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길로 (吉林大學)
저널정보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인문논총 인문논총 제79권 제1호
발행연도
2022.2
수록면
155 - 180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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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10년대 중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삶을 마감하려 했지만 결국 귀환을 택해야만 했던 당대 유림의 실정과 내면을 살피는 논문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함안 유림 서천 조정규라는 인물을 통해 현지에서 그들이 마주했던 현실과 난간들을 조명하면서 ‘귀환의 동인’에 주목하려 한다. 강제병합 이후 ‘피세와 피지’를 염두했던 조정규는 1913년 압록강을 건너 북경까지 유람하며 당지의 실황을 확인한다. 그곳에서 한인 이주민들의 처참한 생활을 목도한 그는, 귀국길에 당시 안동에 머물고 있던 이승희를 만나구체적인 계획을 타진하였다. 이듬해인 1914년 8월경, 그는 마침내 중국 봉천에 당도하여 한인 유교공동체와 독립운동 근거지 구축에 착수했다. 그들은 요중현(?中縣) 덕흥보(德興堡)의 황무지 56만여 평(현 여의도의 2/3 크기)을 매입하여 성공적인 정착을 기대했지만, 대내·외적 재난이 겹치며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후 곡부로 발길을 돌려 그곳으로의 이주를 타진했지만 그 역시 실패하였고 1916년 벗이자 동지였던 이승희역시 죽음을 맞이하며 공교운동은 크게 위축된다. 이 사이 입적 강요와 비적들의 횡포, 일제의 회유 등으로 유림들의 재이주와 귀환이 이어지는 가운데 1917년에는 국내 공교지회도 설립도 추진되었다. 국내 지회 설립을 지원한 그는 1918년 ‘귀환’하며 약 5년간의재중 이민자의 삶도 종결된다. 이러한 그의 행적은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국난을 해결하는데 일조하고, 또 유학의 인문정신으로 약육강식의 시대와 맞서 투쟁하려던 근대 유림의 ‘유교적 저항’을 보여주는 궤적이었다. 더불어 이민자들의 난간을 외면하지 않고 이를 함께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동포애와 이주 지식인으로서의 ‘소명의식’ 실천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또한 그의 귀국은 공교운동의 방향이 국내로 전환됨을 상징하는 행보로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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