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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길로 (吉林大學) 오경양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국제한인문학회 국제한인문학연구 국제한인문학연구 제29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31 - 157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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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00∼1910년대, 중국 북경에 정착한 한인 디아스포라 김자순(1879∼1916)의 생애를 고찰하는 연구이다. 그를 통해 ‘만주와 간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근대기 재중한인 연구의 확대를 시도하면서, 당대 중국에 머물던 이들의 다양한 삶의 군상에 접근하려 한다. 김자순에 대한 기록은 크게 한국 유림의 기술과 일본 측 정보기관의 문서로 구분되는데 관련 기록은 1914∼1916년까지, 총 3년 사이에 작성되었다. 필자는 이 둘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며 그의 생애를 잠정 정리했다. 1879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가 10여 년의 시간을 보내다 1900년을 좌우로 북경에 도착했다. 이곳에 정착한 그는 일본의 밀정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북경일보??의 주필을 맡으며 생활을 이어갔다. 1912년 중국에 입적한 그는 1914년 공교 운동을 위해 북경을 찾은 이승희와 이병헌을 만나며 자신의 자취를 최초로 드러냈다. 이후 신한혁명당과 신화민단이라는 조직에 가담하며 활동 반경을 소폭 늘렸지만 1917년 37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모어’를 망각하고 ‘모국’을 벗어난 채 이역의 신민으로 살아가던 그는 필담을 통해 이승희와 대화했다. 필담을 통해 그는 특히 ‘유교(儒敎)’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피력했다. ‘언어’라는 내적 사유 또 ‘국적’이라는 외적 지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그는, 바로 유교를 통해 이를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즉 해외 한인 독립운동의 특수한 일면을 담고 있는 당시 공교 운동은 사대부들의 집단 이주와 김자순과 같은 정착민의 호응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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