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편성철 (지역문화연구소)
저널정보
한국민속학회 한국민속학 韓國民俗學 第75輯
발행연도
2022.5
수록면
53 - 76 (24page)
DOI
10.21318/TKF.2022.5.75.53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호떡’은 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 중 하나이다. 호떡에 대한 연구는 접두사 ‘호(胡)’의 의미를 통해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서역의 음식이라는 모두가 동의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전파된 호떡의 실제 모습이 현재의 호떡의 모습과 동일했는지는 의문이다.
『통감절요 通鑑節要』에는 당현종이 점심으로 호떡을 먹는 장면과 함께 호떡에 대해 설명했는데 호마(胡麻, 참깨)를 붙여 쪄 낸 떡이라는 것과 호인(胡人)들이 화로에 구워 먹는 떡이라는 상반된 설명이 달려 있다. 한 가지 음식에 상반된 조리법이 적혀 있다. 또 이는 기름에 지지는 현재의 호떡과 또다른 모습이다. 특히 찌는 방법의 호떡은 중국의 만두, 고려의 쌍화와 더 유사하다. 그런 점에서 고려가요 ‘쌍화점’에 언급한 회회아비가 쌍화를 팔던 가게도 서역에서 온 현지인이 호떡을 파는 가게로 생각된다.
조선시대 문헌에 언급되는 호떡의 조리법은 화덕에 굽는 방식과 찌는 방식이 병행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는 밀가루와 설탕이 사치품이기에 대중화되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의 호떡과는 별개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 모습의 호떡이 되기까지 세 번의 변화점을 맞이하는데 첫 과정은 1920년대에 일어난다. 이 시기 제대회사, 제분공장이 세워지면서 설탕과 밀가루가 싼 가격에 유통된다. 사람들은 설탕이 녹아 있는 것을 ‘꿀’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조리법은 고려, 조선과 다르지 않았다. 또한 여전히 사람들은 찐호떡을 호떡으로 알고 있었지만 호떡, 찐빵, 만두라고 혼재되어 사용했다.
두 번째는 광복 이후 화교들의 세력이 쇠퇴하고, 화교출신 호떡 장수들의 빈자리를 한국인이 차지하면서 번철을 활용한 요리법이 등장한다. 아마도 화덕(인도식 화덕 Tandoor)을 사용하지 안는 한국인들이 호떡을 굽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1950년이후 ‘찐빵’이라는 단어가 신문에 등장하는데 번철에 구운 호떡장수들이 들어서면서 호떡과 찐빵이 나누어지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1970년을 전후로 콩으로 만든 식용유가 대량 생산유통되면서 호떡은 기름에 튀기듯이 구워지기 시작한다. 이 때 원주역 호떡집에서 호떡만드는 법을 배워 1968년 안흥에서 호떡가게를 시작한 심순녀의 찐호떡이 유명해지면서 ‘찐빵’이란 이름으로 판매된다.
그 결과 현재 호떡은 밀가루 반죽 안에 설탕을 넣고 기름에 튀기듯 구워낸 떡으로, 찐호떡은 발효된 밀가루 반죽에 팥소를 넣고 쪄 낸 찐빵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호떡의 고형(古形)이라 할 수 있는 고려시대의 찐호떡은 조선까지 쌍화(상화)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으며, 구운 호떡은 중국식 호떡, 항아리호떡 등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번철에 굽는 호떡은 전통호떡, 옛날식호떡 등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언
Ⅱ. 호떡의 어원과 형태
Ⅲ. 조리법에 따른 호떡의 종류
Ⅳ. 호떡의 변화 요인
Ⅴ. 결언
참고문헌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