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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상욱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전북사학 제53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43 - 27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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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호남평야의 미곡산지에 거주하였다. 전북의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미곡을 군산으로 실어내기 위한 철도가 1912년에 설치되면서 인구증가와 함께 화재가 다발하였다. 이시기 전북지역의 화재발생과 손해액은 1920년대에 비하면 아직은 적은 편이었다. 왜냐하면 1910년대에는 1920년대에 비하여 전북에 정착한 일본인의 경제적인 정착이 아직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10년대의 전북지역의 화재는 발생 건수로 보면 한국인이 많았지만 손해액은 일본인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한일인의 경제력의 차이와 인구거주의 多寡에서 기인하였다. 일본인 소유의 정미소, 면화공장 등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 재산손실이 많이 발생하였다. 또한 인구가 많고 일본인이 많이 거주한 지역에는 화재가 늘어났다. 한일합병 이후 조선총독부는 식민통치 제도 개편에 착수하면서 통치기구를 정비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14년 府제 실시와 함께 거류민단도 해체하였다. 1915년에 발포한 「조선총독부소방조규칙」은 소방조를 일제의 경찰보조기관으로 만들었다. 소방조의 구성도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구성된 한일공동소방조의 결성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소방조의 구성원은 한국인이 다수였지만 소방조의 운영권과 주도권은 일본인이 행사하였다. 전북지역에도 한일공동소방조의 결성이 늘어나면서 일본인이 소방조 운영을 주도하였다. 미곡이출의 중심 항구였던 군산이나 전북의 행정중심지였던 전주 그리고 김제·정읍·이리 등 일본인 지주들의 토지침탈이 활발한 지역에서 소방조의 결성이 이루어졌다. 전북지역의 소방조결성은 전북이 전국 최고의 곡창지대라는 특수성을 배경으로 결성되었다. 일본인들은 전북내륙평야의 미곡을 실어내기 위한 철도 인근에 농장을 운영하였다. 이러한 농장과 사업을 기반으로 지역에서 학교조합, 번영회를 만들고 소방조를 결성하여 소방조가 그들의 이익과 안전을 받침대가 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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