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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문경호 (공주대학교)
저널정보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해양문화재 해양문화재 제13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67 - 205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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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안흥진이 설치된 배경과 안흥진의 역사적 위상 변화, 그리고 역사·문화재적 가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안흥에 수군이 처음 배치된 것은 왜구 침입이 극심했던 고려 후기였다. 이후 1370년(공민왕 20)에는 안흥량에 진수군(鎭戍軍)이 배치되고, 조선 건국 초기에는 안행량만호(安行梁萬戶)가 파견되기도 하였다. 그 후 세종 시기에는 소근진첨사가 수군을 나누어 지키는 안흥량수(安興梁戍)가 설치되었으며, 1595년 경에 제진(諸鎭) 중의 하나가 되었다가 1609년에는 거진(巨鎭)으로 승격되었다. 안흥진이 본래 설치된 목적은 한양의 길목인 강화도와 직접 뱃길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과 안흥량을 지나는 조운선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한양 방비책이 중요해지면서 안흥진의 역할 역시 강화되었다. 따라서 진성이 축조되었으며, 방어영으로 승격되고, 군량미를 비축하는 등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으나 청과 일본의 정세가 안정되면서 기능이 약화되었다. 안흥진성에서 1587년(만력 11) 명문이 새겨진 성돌이 발견된 것을 보면 처음 성이 설립된 것은 16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왜구의 침입이 잠잠해지면서 주목받지 못하다가 양난 이후인 1653년에서야 신진(新鎭) 설치가 결정되었으며, 1657년에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진성이 완공되었다. 한편, 본고에서는 그동안 진행된 발굴성과와 지명 및 전언 등을 토대로 신진도에 남아있는 구신진분교와 구수산 만호터를 조선 초 안행량 만호의 주둔지로 추정하고, 능허대의 대청터를 효종 때 이저가 건립한 신진의 터로 추정하였다. 신진도의 본래 명칭에 대해서는 본래 부엌도[廚端島]라고 불리다가 효종 대에 신진이 설치되면서 신진도라고 불리게 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그 근거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읍지』 등의 지리지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안흥진 고지도, 『조행일록』, 『을해조행록』를 제시하였다. 끝으로 이 글에서는 안흥진의 설치와 폐지 과정이 매우 상세히 남아있다는 점, 성벽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수군진성의 구조나 축성방식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 조운과 관련된 지명이나 이야기가 매우 풍부하다는 점,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다는 점에 주목하여 사적 지정 등을 통해 좀 더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할 것을 제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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