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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두현 (강릉원주대학교)
저널정보
강원사학회 江原史學 江原史學 제35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283 - 348 (6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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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세기말 태평천국의 동란을 거친 이후, 붕괴된 청조의 창저 시스템의복구 과정을 분석했다. 특히 화북지역에서 발생한 대한재를 계기로 창저의 복구의필요성이 대두하게 되면서, 실제 창곡의 복구의 방향과 성격, 복구의 주체, 비축유형은 어떠했는지 안휘성 사례를 통해서 분석했다. 아울러 실제 창곡 복구가 이루어진 이후, 재해 발생 시 어느 정도 구호식량을 공급할 수 있었는지도 살펴보았다. 먼저 기존 상평창 위주의 창곡 시스템을 대체할 목적으로, 의창, 풍비의창을 중심으로 한 민간역량 동원을 통해 창저의 복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민간의 자발적운영에 맡긴다는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실제 안휘성에서의 복구 과정은 관료의개입이 현저했다. 그 이유는 안휘성 내 엘리트층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역량의 한계때문이었다. 다음으로 복구 주체를 보면, 역시 안휘성 엘리트층의 한계로 인해 실제 복구는관료의 주도적 역할이 현저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 창저의 문제점 중 하나였던 관의개입이 극복되지 못하고, 오히려 ‘관치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창곡 비축도 실물 비축보다 현금 비축 경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이는 관의창곡에 대한 착복이나 유용 등 폐단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한편 창곡을현금으로 비축하는 현상은 당시 미곡의 상업적 유통을 배경으로 출현한 것이었다. 어쨌든 안휘성에서 복구된 창곡이 과연 어느 정도의 구제효과를 발휘했는지를 분석한 결과, 1인당 비축량 표준에 근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창곡이 복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창곡의 기능은 한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조는 전통적인 구제 수단으로서 창곡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유교적 ‘인정’ 의 논리가 왕조의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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