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왕샤오잉 (북경대학 경제학원)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32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75 - 206 (3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949년 이전 張家口는 중요한 곡물 집산지였고, 食糧業과 製粉業은 張家口의 공·상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1948년 12월 중공이 두 번째로 張家口를 접관한 후, 민영 곡물창고와 제분소는 경영과 생산을 회복하였다. 또 정부의 격려 속에서 잇따라 신식 분쇄기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일부분 민영 곡물창고도 전업하여 제분소를 경영하면서 製粉業의 급격한 발전을 이끌었다. 그런데 신정부는 민영 곡물창고가 제분소를 경영하는 것을 격려하는 동시에, 食糧業과 製粉業을 엄격히 구분하여 민영 제분소가 食糧業을 겸영하는 것은 금지하였다. 한편, 신정권은 식량의 공시가격을 정하는 등의 조치를 통하여 곡물 시장을 통제하였다. 이로써 국·공영 食糧公司는 신속하게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였고, 민영 곡물창고의 영업은 감소하였으며, 곡물의 수매와 판매 임무는 나날이 食糧公司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製粉業은 食糧公司가 제공하는 원료에 의존하였고, 점점 더 많은 민영 제분소가 食糧公司의 위탁 가공 제분소가 되었다. 일단 곡물의 공급이 빠듯해지면, 食糧公司가 충분한 양의 원료를 공급할 수 없게 되어 민영 제분소는 휴업하거나 파산하게 된다. 1953년에 식량 통제구입 통제판매가 실시된 후 민영 食糧業은 시장에서 완전히 물러났고, 민영 제분소도 소수의 위탁 가공 제분소만이 생산을 유지하다가 마지막에는 사회주의 개편의 대상이 되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