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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24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21 - 15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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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대에는 수도 臨安을 비롯하여 지방의 대도시에 다양한 이름을 가진 관청 소속의 곡물창고가 새로이 생겨났다. 이 창고의 특징은 지방관청의 독립된 예산으로 설립한 것이었다. 남송대의 경우 常平倉이나 義倉의 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하였다. 그래서 자연재해나 화재가 발생하였을 때, 나아가 춘궁기에 도시의 가난한 시민들이나 이웃하는 지역의 빈민을 발 빠르게 구제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었다. 또 社倉을 의식하여 지방의 중소도시에도 이른바 관청 소속의 官倉이 설립되기도 했다. 이처럼 도시에 곡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었던 배경으로 인해, 필자는 남송의 도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고, 그 결과 도시의 서민문화도 지속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던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종래의 연구를 통해 남송대에는 농촌지역에 社倉이 설치되었음이 강조되어 왔다. 그런데 남송대에 이르러 왜 갑자기 사창이 출현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남송대에 이르러 상평창과 의창의 대응능력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朱熹를 비롯한 理學系 人士들을 주장으로 인해 농촌에 사창이 출현하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도시의 곡물창고나 농촌의 사창 출현은 같은 배경에서 나왔으며, 같은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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