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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병남 (국가기록원)
저널정보
백제학회 백제학보 백제학보 제27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5 - 26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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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백제 부흥운동기에 단행된 피성 천도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부흥백제국의 천도 전 상황, 천도의 배경과 주체, 그리고 천도의 결과 등을 다각도로 살펴봄으로써 백제 부흥운동의 성패에 대해 재음미해 보려는 것이다. 부흥백제국은 662년 12월에 근거지를 주류성에서 피성으로 일시 옮겼다. 이 피성은 ‘辟城’·‘碧骨’ 등과 연관된 곳으로, 백제의 中方인 古沙城(전북 정읍 고부면)의 일부인 김제 지역으로 추정된다. 당시 백제 땅은 661년 4월 이후 주류성 체제에 각 지역 세력들이 호응하면서 이들의 결속에 주력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일정 정도의 성과를 얻은 부흥백제 주도세력이 권력 다툼에 빠지면서 아직 공고하지 않은 지역 부흥군을 방치하였다. 이로 인해 나·당군과 직접 대치하는 최전선의 부흥세력에게 긴장감 해이와 결속력 와해를 불러와 지라성·윤성·대산책·사정책 및 진현성·내사지성 등 금강 이동 지역의 전략적 근거지 대부분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피성 천도’는 부흥백제국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정치적 셈법이었다. 나·당군의 공세에 대해 불안감에 휩싸인 부흥백제국 구성원들의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하고, 더불어 지속되는 전쟁 상태로 인한 식량 수급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문제가 함께 작용한 것이었다. 따라서 662년 12월에 복신 주도로 피성 천도가 공식화 되었고, 정국을 장악한 복신의 의도에 따라 단행되었다. 하지만 피성 천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663년 2월 거열·거물·사평 등 남반4주와 동방 덕안성을 공략 당함으로써 부흥백제국에게 총체적 위기만 야기하였고, 피성 천도를 무위로 돌리고 말았다. 따라서 복신 주도의 천도는 실패하였고, 그 후유증은 서서히 권력 기반마저 잠식하였으며, 마침내는 663년 6월 풍왕의 친위정변까지 초래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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