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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백제문화 제58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67 - 188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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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부흥운동은 크게 전기와 후기의 두 시기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 시기인 전기의 백제부흥운동은 예산에서 시작해서, 예산에서 끝이 났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예산지역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 중심인물은 복신이었다. 그는 도침을 비롯해서, 흑치상지 등의 여러 세력과 결합하였다. 이어 그는 수도인 부여를 공격하면서 부흥운동을 실질적으로 도모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당나라를 지원하는 신라의 저항에 부딪치자 일본과의 외교교섭을 벌여나갔다. 일본에 있던 부여풍을 왕으로 옹립하여 부흥백제국을 세우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7개월 정도머물렀던 예산의 임존성에서 부안의 주류성으로 거점을 옮겨갔다. 이후 백제 부흥운동의 주도세력이 계속해서 분열하자, 예산지역의 부흥운동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부여 공격에 실패한 도침이 자신의 세력유지를 위해서 임존성으로 물러갔기 때문이다. 이에 복신은 도침을 제거하고, 흑치상지로 하여금 임존성을 관할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대외관계에 대한 입장차이로 복신이 부여풍에게 제거되고, 그의 세력에 속한 지수신이 임존성에 옮겨옴으로써 예산의부흥운동을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었다. 이에 흑치상지는 당나라에서 돌아온 부여융과 결합하는 길을선택하고, 당나라에 항복하여 임존성을 함락시킴으로써 전기의 백제 부흥운동은 끝이 나고 말았다. 여기에는 흑치상지가 부여융과 결합하여 당나라와 웅진도독부를 통하여 또 다른 형태의 백제부흥운동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도 작용하였다. 그러나 임존성이 함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나라가 이들의 바람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자, 664년에 들어와서 사비산성 전투를 다시 일으킴으로써, 마침내부여융이 웅진도독으로 부임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백제유민들은 당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신라와 대립하면서 후기의 백제부흥운동을 새롭게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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