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선아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전북사학 제58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47 - 172 (2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조선의 17세기는 두 차례의 호란(胡亂)으로 민생이 피폐하고 국기(國紀)가 혼란해진 시대였다. 당시 조선의 사림은 청나라와 굴욕적인 군신관계(君臣關係)를 맺은 현실을 천하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으로 인식하였고, 존화양이(尊華攘夷)와 숭명반청(崇明反淸)의 이념을 품고 복수설치(復讐雪恥)의 시대를 기약하였다. 무너진 기강(紀綱)과 예의(禮儀)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예송(禮訟)이 일어나고,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서인 내부에서도 회니시비로 인한 노론과 소론의 갈등이 깊어졌고, 이러한 붕당의 분화 속에서 지방의 사림도 그 입장과 노선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17세기 붕당정치가 심화되는 시대에 호남 장성에 세거한 기정익(奇挻翼)은 호남의 사림의 학문적, 정치적 노선과 입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기건(奇虔), 기준(奇遵), 기대승(奇大升), 기효간(奇孝諫)으로 이어진 호남 사림의 명맥(命脈)을 계승한 학자로, 송시열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윤증, 김수항, 박세채 등과 교유하였다. 특히 기정익이 박상현과 나눈 성리학설에 대한 논변은 ‘율곡학파의 학술 논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회니시비가 시작되는 즈음에 기정익은 송시열과 윤증 사이에서 중재를 위해 노력하였다. 기정익은 송시열과 윤증의 갈등이 ‘강도의 일’과 ‘윤휴와의 절교’를 발단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정리하였다. 당시 윤휴에 대한 입장은 노론과 소론이 갈라서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는데 기정익은 송시열과 윤증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이었지만 사제관계로 맺어진 송시열을 존숭하면서 노론의 길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기정익의 선택은 호남의 노론 학맥이 형성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정익이 교유한 흥덕의 평해황씨와 광주의 순천박씨, 장성의 황주변씨는 호남의 대표적인 노론 사족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호남의 노론 사족은 노론과 남인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는 시기에 경기와 호서 노론과 협력하며 노론의 세력 확장에 일조하였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