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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세호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저널정보
우리한문학회 漢文學報 漢文學報 제42권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229 - 25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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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通寺는 고려 시대 松都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지난 2000년대 초 우리나라 대한불교천태종 교단과 북한의 조선경제협력위원회가 복원사업에 착수하면서 오늘날까지 과거의 면모를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주목하여 그 역사와 의의를 조명한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고려의 기록과 종교적 특징에 주목한 사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글에서는 조선 시대 문헌 기록과 시문을 함께 분석하여 영통사가 지닌 역사적 의의를 다시 확인하고자 하였다. 고려 시대 영통사는 국가의 중요한 사찰로 기능했다. 고려의 국왕들은 이곳을 방문해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고, 특히 왕자 義天이 기거하며 그 위상이 더해졌다. 이러한 면모는 조선이 건국한 뒤에도 지속되었는데 조선 사대부의 기록에서 영통사 승려와 교유하고 유람을 기념해 지은 여러 시문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영통사는 임진왜란의 병화로 인해 결국 전소되었고 소규모 중수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興聖寺로 이건된 뒤 역사에 이름만 남아 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영통사는 아름다운 산수와 어우러져 송도의 명승으로 회자되었다. 의천의 공적을 기린 大覺國師碑는 그 유구한 역사와 함께 金富軾의 글과 吳彦侯의 글씨로 당대 문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土橋는 아름다운 자연의 정취로 유람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西樓는 승려 月窓(義砧)의 시와 여러 차운시가 전하며 명승의 위상을 드러냈다. 아울러 다양한 전설과 함께 전조의 멸망에 대한 회고 및 인생의 무상감을 읊은 작품들도 전한다. 영통사는 역사적 가치와 산수의 아름다움으로 시문에 기록되었고 역사에 회자되었으니 송도 최고의 명승으로 규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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