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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유진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전북사학 제71호
발행연도
2024.7
수록면
137 - 164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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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정조-순조대 핵심관료였던 徐榮輔(1759~1816)가 1808년(순조8) 평안도관찰사 재임 시 추진했던 북방 정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그는 18세기 중·후반부터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고위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790년(정조14) 함경도암행어사, 1808년(순조8) 평안도관찰사 등 북방 지역 지방관으로 파견되면서 関防과 民弊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 인물이었다. 그가 평안도관찰사로 재임했던 시기는 1808년(순조8)부터 1810년(순조10)까지로 19세기 초 청은 내부적으로 白蓮敎徒의 亂을 비롯한 잦은 民亂을 겪고 있었으며, 소수관료들이 정권을 독점하여 부정부패를 행사함으로써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혼잡한 시기를 맞고 있었다. 서영보는 청의 내부적 혼란으로 발생한 국력 쇠퇴를 목도하면서 청이 세력을 잃고 영고탑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유사시 청의 칩임에 대비해야 함을 주장하며, 조선의 국방력 강화를 위해 평안도 지역의 방어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여러 정책을 추진하였다. 첫째, 군폐 문제 해결을 통해 군대의 기반이 되는 인적 자원의 유실을 방지하고자 했다. 둘째, 지역적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인재 선발책을 주장하여 효율적인 군사 체계를 구축하려 하였다. 셋째, 산성 수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植松鎭에 外城을 신축하여 방어시설을 재정비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조선 후기 청의 불안한 내부 상황으로 인해 야기된 영고탑 회귀설의 재등장이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활동하였던 조선관인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던 대청인식관이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중앙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던 서영보의 지방 관료로서의 역할과 국방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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