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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수경 (지역유산연구원) 김일동 (고흥군)
저널정보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호남학 호남학 제69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65 - 20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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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고흥군의 연혁에서는 ‘1395년 왜구를 피해 고흥 읍치가 보성군 조양현으로 옮겨가고, 1441년 현재의 흥양 읍치로 옮겼다,’라고 간략히 서술하고 있다. 우선 본 글에서는 1395년부터 1441년까지 보성군에 소재하였던 고흥 읍치에 천착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의 ‘고흥읍석성(高興邑石城) 둘레가 565 보(步)이다’라는 기록을 근거로 현재 보성군 조성면에 소재한 석성은 1424년 무렵 고흥읍 석성이 축조되어 1441년까지 약 17년 동안 고흥현(高興縣)의 읍성으로 기능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현장 조사 결과 보성군 조성면 우천리 고내마을에는 성곽, 북문, 객사, 동헌, 내아, 군창[兆陽倉] 등이 구전(口傳)되고 있다. 성문과 관아건축물은 고흥읍성 내의 건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동로현과 고려시대 조양현의 기록에서는 성곽의 기록이 검토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1441년 본 현으로 돌아온 고흥 읍치는 ‘흥양(興陽)’으로 개칭하여 흥양의 행정, 국방을 주관하였다. 흥양 읍치 내 시설물 중 존심당 및 아문[전남 유형문화재 53호], 남휘루[전남 문화재자료 183호]와 홍교[전남 유형문화재 73호]를 고지도?지리지 및 1920년대 초반에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검토하였다. 흥양 읍치의 관아건물은 목조건축물이기에 중수가 필요하였지만, 흥양 읍치 내부의 종횡으로 흐르는 하천은 물난리로 수재를 자주 입었고, 그 피해는 관아건물에도 미쳤음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남휘루에 있는 6점의 현판을 근거로 남휘루의 역사를 고증할 수 있었다. ‘정확한 근거는 없으나 1667년 현감 안책이 건립하였다.’라는 문화재 안내문을 참고하여 남휘루는 1787년 흥양현감 안책이 건립하였으며, 남휘루 상량문을 통해 1887년 당시까지 아문을 ‘瀛洲衙門’이라고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재 아문의 이름은 ‘高興衙門’이다. 따라서 고흥아문보다는 영주아문이라고 하여야 역사적 사실과 일치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옥하리 홍교(虹橋)’라는 문화재 명칭과 문화재 성격이 일치하는지 검토하였다. 고흥읍 서문리에 소재한 이 문화재는 성벽을 축조할 때 하천의 배수로이므로 수구가 옳으며, 방어시설인 철책을 건 흔적이 홍예에 남아 있으므로 수문이란 명칭이 합당하다. 비록 고지도에 서홍교, 남홍교, 수구홍교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기능을 고려한다면 이 문화재는 ‘고흥 서문리 위수문?아래수문’으로 정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본 연구가 흥양 읍치 관아건물의 고증 및 복원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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