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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덕진 (광주교육대학교)
저널정보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남도문화연구 남도문화연구 제41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45 - 17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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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영암의 달량은 국방상 요충지에 위치한 포구로서 전방에 달도, 서쪽에 이진을배후 포구로 두었다. 그리하여 달량은 인구가 조밀하고, 어업·상업이 발달하고, 선박이왕래하는 곳이었다. 이곳에 조선왕조는 만호진을 설치하였지만, 1522년(중종 17) 전방의 완도에 가리포진이 신설되면서 권관진으로 강등되었다. 이 상태에서 1555년(명종1) 을묘왜변을 맞고 진성이 함락된 후 권관진마저 혁파되고 말았다. 수군진 혁파 후달량은 고달량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와 함께 경제·문화적 역할이 증대되었다. 그 결과 고달량 포구에 완도를 오가는 진선, 곳곳을 누비는 상선, 서울로 향하는 세곡선, 제주도를 오가는 공무선이 출입하였다. 그리고 영암 선소로서 군선이 정박하고 군관 출신의 관리자가 파견되었고, 장시가 들어섰고, 4개 면 환곡을 관리하는 이진창(남창)이 설치되어 감관·색리에 의해 운영되었다. 자연스럽게 숙박업이나 유흥업도 발달하여 고달량은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고달량도 1906년 월경지 정비 때 해남으로 이속되어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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