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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구진성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68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41 - 7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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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8세기 초반 진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知命堂 河世應의 학문 성향과 학자적 위상을 중점적으로 서술하였다. 하세응은 覺齋 河沆에서 松亭 河受一로 이어지는 남명학파의 가학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여 당대에서 남명학문을 충실히 재해석하였다. 이러한 그의 학문 성향은 息山 李萬敷와의 학술 토론 과정에서 뚜렷이 표출되었다. 이만부는 강학을 통한 지식의 확충을 중시했지만, 하세응은 남명에 근거하여 실천이 강조되어야 하는 당위를 여러 측면에서 역설하였다. 하세응은 남명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에 입각하여 판단했고, 그의 출처 자세와 학문 지향도 현실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즉, 유학의 도가 실현될 수 없는 처참한 현실에서 출사를 단념하였고, 그러한 시대를 구제할 희망이 학자에게 있다는 인식하에 口耳之學을 극도로 경계하고 학문의 실천을 강조한 것이다. 하세응의 학자적 위상은 來庵 鄭仁弘 계열의 남명학 계승자라는 측면에서 조명할 수 있다. 그의 가학 연원인 하수일은 정인홍의 문인이면서 남명학을 계승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던 인물이며, 하세응 종가에는 정인홍의 남명 변무 글을 모은 책이 현전한다. 따라서 하세응이 남명학의 현재적 가치를 역설한 사실 또한 정인홍의 영향과 무관할 수 없다. 정인홍이 남명학문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천양한 앞선 행적이 가학과 문헌을 통해 하세응에게 전수되었던 것이다. 비록 인조반정 이후 남명학파는 침체되어 갔지만, 하세응과 같이 당대에 남명학을 자기화한 인물이 지속적으로 등장함으로써, 남명학문의 가치는 제고되고 남명학파가 특유의 정체성을 가진 채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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