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덕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연구 인문연구 제87호
발행연도
2019.6
수록면
165 - 200 (3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고려는 중국 遊學과 制科 응시를 통해 선진 문물을 흡수하고 국제적 인재를 양성하는 데 주력했다. 예컨대 金行成은 송나라 국자감에 입학한 최초의 외국인이자 제과 급제자였고 金濤 역시 외국인으로서 최초의 명나라 제과 급제자였다. 송나라 연간에는 국자감에서 수학한 뒤 제과에 응시했으나 원나라와 명나라 때는 제과 응시만 이루어졌다. 송나라 국자감 입학을 위해 출국한 고려 자제가 제과에 급제하기까지 적게는 1년에서 많게는 6년이 소요되었다. 짧지 않은 유학 기간을 감안한다면 귀국했을 무렵 宋風의 유려한 詩文을 구사하고 국제적 안목까지 갖추었으며 중국어 실력도 상당했을 것이다. 원나라 시기에는 자국에서 문한직을 충분히 역임한 능문자 중에서 우수한 인재를 엄선하여 제과 응시 기회를 부여했다. 응시자의 절반 정도가 고려 禮部試에서 壯元을 차지했던 수재였고 나머지도 丙科 2위 이상의 등차를 받았던 인물이었다. 崔瀣부터는 제과에 합격하고 나서 원나라에서 일정 기간 관직을 역임했으며 중국 문사와의 교유를 통해 학문과 식견을 넓힐 수 있었다. 14세기 초·중반기는 원나라 제과 출신이 고려 조정에서 왕성하게 활약하며 학술과 문예 수준을 한껏 끌어올린 시기였다. 이들은 외교문서 제작을 전담했고 서적 편찬과 간행 사업을 주도했으며 교육과 과거를 통해 우수한 인재를 배양했고 외교 부분에서도 使臣과 館伴으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고려에서 명나라 제과에 응시한 것은 한 차례다. 1371년 朴實, 金濤, 柳伯濡가 응시하여 김도가 합격했다. 고려와 조선을 통틀어 명나라 제과에 응시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우리나라 사람 중에 명나라 과거에 급제한 것도 김도가 유일하다. 고려 조정에서는 제과 응시뿐만 아니라 명나라 국자감에 고려 자제를 입학시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명나라 환관과 사신이 살해되는 사건, 공민왕 시해사건 등이 연거푸 발생하여 국자감 입학의 염원은 수포로 돌아갔고 이후로는 제과 응시조차 실현된 적이 없다. 유학 및 제과 응시의 단절은 조선시대의 학문적 경직성과 사상적 폐쇄성을 초래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유학 관련 외교문서의 수수
3. 고려의 對중국 유학과 제과 응시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