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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록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91호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41 - 82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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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건국이후 왕조의 정통성과 통치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대외관계를 적극적으로 맺었다. 조선의 대외관계는 명나라를 대상으로 한 외교관계이며, 여진족, 일본 등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조선의 대외관계는 국제정세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정치적,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활발한 대외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했다. 원나라를 대신하여 동아시아 중심국가로 등장한 명은 홍무제 치세기간에 국내적으로 황제 중심의 일원적인 통치체제를 갖추고, 대외적으로 명나라 중심의 국제질서를 형성하고자 했다. 명나라는 동북쪽에 존재한 조선을 주변국으로 인정하고 요동과 한반도 북부에 거주하던 여진족을 명나라의 영향권 아래에 두고자 적극적인 회유정책을 시행했다. 구체적으로 명나라는 요동을 적극 통치하기 위해 군정체제를 갖추고 주변의 여진족을 대상으로 기미위소를 설치했다. 명의 영역으로 인식하지는 않았지만, 명의 영향력에 포함시켰다. 조선에 대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을 설정하고 안정적인 국가관계를 형성하고자 했다. 조선은 고려를 대신하여 한반도의 국가로 등장한 뒤, 지속적으로 명나라와 안정적인 외교관계를 맺었다. 또한, 국제정세의 영향으로 여진족을 비롯한 북방민족이 침입할 것에 대비하여 한반도 북부에 거주하던 여진족을 조선의 영향권 아래에 두고자 했다. 이렇듯 조선과 명나라는 상호 요동과 여진족에 대한 영향력을 두고 갈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조선과 명나라는 상호 인식한 국경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국제질서를 지향했다. 그러나 16세기 여진족이 통합되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며 조선의 국경개념은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여진족이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 조선은 명나라와 연계하여 적극적으로 여진족을 제어하고자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란 급변하는 시대상황으로 여진족의 성장을 억제하지 못했다. 여진족은 세력을 확장하며 두만강, 압록강 유역의 여러 여진부족을 굴복시키고, 전체 여진족을 통합한 뒤에 후금이란 국가를 세웠다. 후금은 본격적으로 명나라와 전쟁을 일으키고, 청나라로 개칭한 뒤 명나라를 멸망시켜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등장했다.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문제는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문제와 연속적인 성격과 함께 독자적인 성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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