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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남희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제65집
발행연도
2015.9
수록면
51 - 7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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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인재 선발과 교육에 나타난 특성을 토대로 유교적 공공성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고려는 5백년간 장기 지속한 왕조로 개방성과 다양성을 지닌 사회였다. 처음으로 과거제도가 도입된 것은 광종 9년(958)이다. 인재를 시험을 통해 선발한다는 점에서 과거제도는 공공성과 친화력을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거제는 신분을 넘어서 개인 능력만을 중시하는 관리 등용 제도는 아니었다.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한정되어 있었다. 음서제가 좋은 예라고 하겠다. 5품 이상 관료자손에게 관직 진출 기회를 준 것이다. 하지만 음서와 과거는 성격이 달랐다. 관직 진출에서는 과거 출신이 유리하였다. 귀족제 사회라는 큰 틀 속에서 고려에서는 과거제를 실시하였다. 즉 능력을 증시한다는 점은 공공성의 확대를 말해주는 것이다.
고려 개국과 함께 과거시험을 위한 교육 기관 역시 확대되었다. 개방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측면을 보여주었다. 교육기관은 국자감과 향교로 상징되는 공교육과 사학 12도(徒)로 대표되는 사교육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국가에서는 공교육을 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학 12도가 상징해주듯이 사학 역시 크게 성행하였다. 그런데 귀족제라는 측면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다. 교육은 과거제와 함께 고려 귀족제 사회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신분제의 원리 위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고려시대 교육과 과거제는 어떤 측면에서 공공성과 친화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음서 출신들이 승진과 지위 상승을 위해 이용하는 측면도 있었다. 출세의 사다리 같은 것이었다. 그런 만큼 공공성이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이 고려사회의 교육과 과거제에 담겨 있는 공공성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고려 말기에 이르러 새로운 유학으로서의 성리학의 전래와 더불어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새로운 학문으로서의 성리학은 종래 인기 있었던 제술업 보다는 경전을 정확히 해석하고 암송하는 데 열중하던 명경업에 더 친화성을 갖는 것이었다. 또한 사대부는 관학의 육성, 확대를 추진하였다. 유교적 공공성의 확대하는 측면에서 조선의 건국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근대 이전 사회에서의 공공성은 시대의 흐름, 특히 신분제의 변화와 관련해서 복합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겠다.

목차

〈요약문〉
Ⅰ. 머리말
Ⅱ. 유교와 공공성 : 유교적 공공성
Ⅲ. 지배층의 충원
Ⅳ. 공교육의 위상과 변화
Ⅴ. 맺음말 : 유교적 공공성의 변화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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