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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인욱 (경희대학교)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71호
발행연도
2021.3
수록면
9 - 54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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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자료를 통해 살펴본 이 변동의 시기 만발발자 유적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기원전 4세기경에 만발발자 집단은 토광묘를 축조하고 있었다(Ⅱ구역). 이들은 2단계가 되면서 모피무역으로 야기된 전염병으로 추정되는 큰 변화를 맞이하여 20, 21호의 집단토광묘의 예에서 보듯이 집단 내부의 인구가 급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무덤의 축조 입지는 유적의 서편에서 동편으로 옮겨졌고, 토광묘 집단 이외에 대석개묘로 대표되는 새로운 집단이 유입되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동화되었고, 입지를 달리하여 구릉의 정상에 대석개묘와 적석총을 축조하는 등 사회는 새롭게 전환되어 통합되어갔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와 묘제의 통합을 거시적으로 바라본다면, 그 이전까지 요서지역과도 연결되었던 만발발자의 네트워크가 해체되었고, 대석개묘 집단의 유입을 거쳐서 그 동쪽의 고구려로 대표되는 압록강 중상류지역 집단의 네트워크로 편입되었다.
통화 만발발자는 통화와 환인 일대가 후기 고조선의 영향을 벗어나 초기 고구려 세력에 편입되는 과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유적이다. 통화 일대는 명도전이 출토되는 압록강 중~하류 지역에서 떨어져 있으며, 산악이 매우 발달한 지역으로 농업보다는 어로, 사냥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이 지역은 고조선이 발흥하던 시점에 모피의 1차 취합 및 가공을 하던 집단으로 기능했다. 만발발자는 비파형동검 전기 단계에서 시작하여 토광묘 위주의 후기 고조선에서 대석개묘와 적석총으로 대표되는 초기 고구려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동아시아의 거시적인 문화변동을 보여주는 동시에 통화 지역이라는 독특한 조건에 적응하며 살았던 지역집단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묘제의 구성과 변천
Ⅲ. 무덤으로 본 만발발자 사회의 특성
Ⅳ. 동북아시아 고대 사회의 변동과 만발발자 사회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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