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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규환 (대구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동서인문 동서인문 제14호
발행연도
2020.10
수록면
5 - 41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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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감염병의 유행에 대응하여 동아시아 각국이 어떤 노력을 경주했는지, 각국의 방역대책에 어떠한 차이가 있었으며, 왜 서로 다른 방역성과를 가져왔는지를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의 동아시아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이 글은 19~20세기 동안 이상적인 방역조치로 간주된 ‘봉쇄형’ 방역대책을 실행하는 데 있어 의학 지식과 정보, 임상가와 임상 술기, 지적 · 실천적 네트워크, 정부와 민간의 지원과 협조 등 방역 인프라의 구축 과정에 있어 각국의 차이에 주목하였다.
청말 중국은 근대국가 여명기에 가장 먼저 우두법을 도입하였으나 국가 지원도 없었고, 지적 · 실천적 네트워크도 동부 연안의 조계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반면 에도시기 일본은 국가지원은 없었지만, 난학이라는 지적 · 실천적 네트워크가 광범위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조선은 실학자들의 일부 노력이 있었지만 방역을 위한 모든 분야의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다.
19세기 후반 콜레라와 페스트 유행시기에 일본은 근대적 방역을 위한 세균학적 검진시스템의 저변을 확대해 나갔고, 예방백신과 혈청치료법 등의 개발에 적극적이었다. 이를 통해 일본은 제국주의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반면 중국은 조계지를 중심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선구적인 방역조치를 실행하고 있었지만, 지방 군벌들의 견제와 반식민지의 압박 속에서 통일적인 방역체계를 가동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 있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한국은 외세의 간섭과 미약한 국력으로 강력한 방역체계를 구축할 수 없었다. 한국은 독자적인 방역체계 구축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 임상가와 임상 술기, 지적·실천적 네트워크, 정부와 민간의 지원과 협조 등 관련된 방역 인프라를 한 번도 제대로 구축해 본 적이 없었다. 19~20세기가 ‘봉쇄형’ 방역 인프라의 시대였다면, 21세기 동아시아 각국은 ‘개방형’ 방역 인프라의 구축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두창과 우두법: 의학 지식과 임상 술기의 간극
3. 콜레라와 지적 네트워크의 구축: 진단법의 대중화
4. 페스트와 세균설: 감염 경로 확인과 관민 협력의 문제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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