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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주의돈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83호
발행연도
2021.8
수록면
303 - 33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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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721년 제정된 영국의 방역법과 그것의 의학적 토대를 제공한 리처드 미드(Richard Mead)의 저술, 그리고 방역법의 핵심적인 조항을 둘러싼 논쟁과 그 조항의 폐지를 살펴본다. 1720-3년 마르세유를 시작으로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흑사병이 유행했을 때 영국인들은 1665-6년의 런던 대역병(Great Plague of London)을 떠올리며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의회는 흑사병의 유입을 막기 위해 그리고 흑사병이 영국에 들어왔을 경우 그 확산을 막기 위해 1721년 1월에 새로운 방역법을 제정하였다. 당시 영국의 탁월한 의사 미드는 방역법의 이론적 토대와 실무적 지침을 제공하였다. 1721년 방역법의 특징은 영국 내로 흑사병이유입되었을 경우 이전에 비해 매우 적극적인 조치 - 격리병원으로의 감염자 강제이송, 방역선 설치를 통한 감염지역으로부터의 이동 제한 - 를 취하도록 규정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1721년 방역법 중에서 위의 적극적인 조치를 규정한 조항들이 여전히 프랑스 남부에서 흑사병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 폐지되었다는 사실이다. 기존 연구에서 폐지의 주요한 이유로 간주되는 것은 흑사병 위협의감소, 영국 상인들의 상업적 이해관계, 월폴(Robert Walpole) 내각과 반대파 사이의 정쟁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요소들이 방역법 일부 조항의 폐지에 미친 영향을 인정하지만 기존 연구가 간과해 온 요소에 주목한다. 그것은 방역법 반대파의 정치공세 이면에 존재했던 부유층의 특권의식이다. 반대파는 방역법의 일부조항이 강압적이기 때문에 영국민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실상 그 자유를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예를들어 생계에 대한 염려 없이 감염지역으로부터 안전하게 도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부유층뿐이었다. 따라서 국내 방역 대비책을 규정한 조항의 삭제에는 부유층의 특권의식을 대변한 의회 의원들이 영향력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흑사병이 영국으로 유입되지 않고 1720-3년의 위기가 지나갔지만, 만약 흑사병의 유입으로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면 1721년 방역법의 일부 조항 폐지는 특권 의식에서비롯한 뻐아픈 실책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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