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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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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남도문화연구 남도문화연구 제39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7 - 31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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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는 신라 불교교학의 중추를 이루었던 화엄의 중심 사찰이다. 화엄종찰이라 불 리던 북악 부석사와 짝하여 남악 화엄사는 화엄교학을 정립하고 사상적 위상이 뚜렷했 다. 이는 현존하는 연기의 『화엄경』 사경과 화엄석경으로 입증된다. 화엄사가 사상적으 로 중심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조형적으로도 당대를 대표하는 위상을 가졌다. 신라말 화엄사에는 국가의 官壇이 설치되어 수많은 수행자를 배출하는 터전의 역할을 담당하도 록 했다. 영관 등이 화엄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면서도 새롭게 선을 지향하는 신진 승려들 이 출가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불교사 상에서 화엄사가 갖는 또다른 중요한 위상은 조선후기 사찰 중창 사업이 었다. 임란 이후 거의 모든 사찰들이 전란의 피해를 복구하는 중창을 도모할 때, 승군을 지휘하며 불교계를 이끌던 碧巖覺性은 여러 곳을 거쳐 화엄사에서 본격적인 중창불사를 추진하였다. 먼저 중심 법당을 세우고, 보조 불전으로 追福신앙의 대상인 명부전을 건립하며, 대웅전 앞쪽으로 누각 보제루를 세웠다. 대형 괘불을 조성하여 대규모 불사를 거행 할 수 있게 하고, 이런 사실을 사적기를 편찬하여 기록하였다. 이와 같은 불사의 진행과 정리 과정은 이 시기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던 중창 불사의 한 전형이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크다. 이렇게 이룩한 장대한 터전에서 후학들은 교와 선을 갈고 닦아 화엄사의 정신을 고양하였고, 그 전통은 조선 후기 내내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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