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靖山 宋鎬坤의 남명학파적 성향 一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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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Song, Ho-Gon's Nammyeong-School Characteristics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66호 KCI Accredited Journals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 - 30 (30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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靖山 宋鎬坤의 남명학파적 성향 一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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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산 송호곤(1865-1929)의 생애에서 남명학파적인 요소를 추출하여, 일제강점기 하에서 남명학이 어떠한 양상으로 수용되었는지를 일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작성되었다. 송호곤의 가계는 조식이 삼가로 이주한 초기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조식 수양론의 핵심이 극렬한 언어로 형상화된 「욕천」의 창작에도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게다가 조식 사상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신명사도」가 이 시기에 완성된 사실을 통해, 송호곤 가계의 인물들은 남명학의 최고조를 가까이서 선명하게 체험할 수 있었고, 이러한 강렬한 경험이 대를 이어 송호곤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송호곤은 「신명사도」의 ‘國君死社稷’이라는 언표에서 드러나는 목숨을 건 수양의 자세가 남명학의 본질이라고 보았고, 「욕천」을 차운하면서 그러한 수양의 극치를 이룬 인물이 두류산과 같은 조식이라고 형상화하였다. 조식 학문의 핵심이 비타협적 수양론이라고 인식한 송호곤은, 일제의 제도를 일체 인정하지 않고 自靖의 길을 택하였다. 구체적으로는 遯의 지향을 지녔는데, 이는 조식의 大畜을 포함한 개념이었다. 그러면서도 시사에 깊이 관심을 기울이며 유학이 쇄신되기를 희망했는데, 당파에 의해 올바르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던 조선의 역사를 비판하면서, 당파의 극복을 모든 문제 해결의 전제로 인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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