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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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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39권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55 - 189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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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아우구스투스가 창안한 아우구스탈레스(Augustales)를 통해서 아우구스투스의 종교 정책을 살피는 것이다. 아우구스탈레스는 황제 숭배 의례 수행에 참여했던 사제 계급이다. 이들의 약 85%-95%를 차지했던 사람들은 해방 노예들이었고 제국의 서부나 이탈리아에서 발견되는 약 2천 5백 개의 비문들에 그 존재가 집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비문들은 아우구스탈레스가 그들이 맡았던 직책을 자랑하면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세운 묘비들이거나 그들이 속했던 도시 지자체에서 아우구스탈레스가 도시에 행한 공적인 시혜에 감사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이 일반적이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정치적인 갈등과 사회적인 분열을 정리하고 새로운 프린키파투스 체제를 열게 되면서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안정과 로마 사회의 화합을 추구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는 이 같은 화합 정책의 한 방식으로 이전에 노예 신분이었다는 사실로 인해 공적이고 행정적인 부문에 진출이 제한된 해방 노예들에게 아우구스탈레스라는 사제직을 수여했던 것 같다. 아우구스탈레스는 황제 숭배 의례와 관련된 기념물을 봉헌하거나 살아있는 황제에게 신전을 바치는 방식으로 황제 숭배 의례에 참여했다. 그들에 의해서 황제 숭배 의례는 실질적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아우구스탈레스의 역할 가운데 또 다른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도시 공동체에서의 공적인 시혜와 관련된 것이다. 그들은 도시의 공공건물을 보수하거나 신축하기도 했고 도시민들을 위한 만찬을 배설하거나 선물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혹은 당시 로마 사회에서 인기가 있던 경기를 개최하기도 했고 자신들의 재산을 도시에 유증 하기도 했다. 이 같은 아우구스탈레스의 행위는 그들에게 크나큰 영예들을 부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은 구별되는 좌석에 앉을 수 있었고, 특별히 영예로운 토가(toga)를 입을 수 있었고, 때로는 파스케스(fasces)를 든 릭토르(lictor)들의 수행을 받을 수 있었다. 도시에서는 그들의 조상(statue)을 도시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세워서 그들의 업적을 기리기도 했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탈레스라는 새로운 사제직은 황제 편에서는 황제 숭배 의례를 확산시키거나 각 도시의 복지에 도움을 주며 해방 노예의 편에서는 사회의 공적인 삶에 당당히 편입할 수 있는 상호 호혜 관계를 이룰 수 있었던 교묘한 장치였다고 할 수 있다. 아우구스투스가 해방 노예를 위해 수립한 아우구스탈레스 제도는 정치적 안정, 사회적 결속력, 경제적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된다. 아우구스투스는 황제 숭배의 사제직인 아우구스탈레스의 수립이라는 그의 종교 정책을 통하여 그의 정치체제를 견고히 하고 동시에 로마 사회의 소통과 화합을 이루어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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