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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순주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65호
발행연도
2017.2
수록면
139 - 180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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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트교가 공인(313)된 이후 로마제국은 황제의 주관아래 동?서로마교회의 에큐메니칼(Ecumenical) 공의회(1-4차)를 개최하였다. 크리스트교의 보호자요 후원자로 자처하던 황제의 주관 하에 개최되었던 이 공의회에서 ‘삼위일체 신(Trinitarian God)’에 관한 논쟁이있었는데 1, 2차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논쟁이, 3, 4차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회의 결과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일본질이며,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혼합?변함?나뉨?분리 없이 연합되었다’는 크리스트교의 정통신조가 확립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신조로 인해 제국 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신앙의 표준과 그들의 내세의 삶에 대한 소망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1-4차 에큐메니칼 공의회(325-451)가 개최되던 시기에 로마는 외부적으로 변방의 게르만족의 침략에 시달리던 시대였으며, 내부적으로 황제의 권력이 불안정한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제국의 황제들이 크리스트교의 공의회를 소집했던 것이 단순히 크리스트교의 교의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 아닌 또 다른 목적 즉 제국의 황제가 보편 군주권을 확립하여 자신의 제국을 보편제국으로 세우려는 목적이 더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러한 상황은 1, 2차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는 신성 면에서 성부와 동일본질이라는 것이 채택되고 정통신조로 확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공의회(1차)를 소집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유사본질을 주장했던 아리우스주의자를 자신의 종교고문으로 기용하여 50년간 아리우스주의자들이 득세하게 하는 모순적 행동을 하는 데서도 살펴볼 수 있다.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성자가 성부보다 신성 면에서 약간은 못하다는 아리우스주의가 황제인 자신을 권위를 정점으로 보편 군주권 확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같은 원리로 3, 4차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혼합?변함?나뉨?분리 없이 연합되어 있다는 것이 정통신조로 채택되었는데 이는 제국이 어떠한 이유로든 나뉘어져서는 안 되는 보편제국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테오도시우스 2세의 통치논리에 도움이 되었다. 공의회의 신조가 확립된 지 25년 만에 서로마는 게르만족들에 의해 붕괴되었으며, 동로마의 동쪽 지역의 단성론자들은 정죄되어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잃어가게 되었고 수많은 네스토리안들은 페르시아로 이주했다. 크리스트교의 1-4차 공의회는 크리스트교의 진리의 정통성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공의회를 통해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고 보편제국에서의 황제의 위상을 신성화시키고자 했던 황제들의 의도는 실패했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의 역사는 중세시대에 또 다시 계속적으로 반복되었다. 역사는 정치권력이 종교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의 정치권력은 자신들의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항상 종교를 이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종교는 진리 그 자체에 헌신된 사람들로 인해 결코 정치 권력자들의 권력을 정당화시켜주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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