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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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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공자학회 孔子學 孔子學 제39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77 - 104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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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최치원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유학, 문학, 서가의 측면에서 검토함으로써 최치원이 시대와 역사적 공간에서 어떻게 평가되고 있었으며, 그 평가들이 어떻게 역사적 흐름속에서 용인되고 공감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 연구이다. 유학의 공헌에 따라 문묘종사가 결정된다는 점을 전제할 때 고려 이후 조선까지 이어지는 그의 문묘종사는 고려뿐만 아니라 이단(異端)을 엄격히 배척하는 조선 지식인들에게도 그는 여전히 유종(儒宗)으로서 평가받고 있었다. 문학의 비조로서 최치원에 대한 평가도 신라 당대부터 대체로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그의 문학들은 조선시대 정도전을 비롯하여 남곤, 허목, 이긍익, 정약용, 그리고 김윤식까지 한문 문학의 비조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통일신라 비문이 주로 구양순풍의 해서가 쓰였다가 왕희지의 서풍이 유행하면서 왕희지풍의 행서비가 건립되기 시작하였던 최치원 당대의 서풍을 고려해보면, 그의 서풍은 해서에 행서를 융합한 독창적인 서풍이라는 점에서 당대 서체를 충실히 익힌 후에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를 완성한 것임을 확인되었다. 최치원에 대한 역사적으로 평가들을 고려해 볼 때 최치원을 바라보는 현대의 공안은 현재 우리가 최치원을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인가?’를 묻기보다는 ‘우리가 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론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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