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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현숙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목간학회 목간과문자 목간과문자 제21호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227 - 247 (21page)
DOI
10.35302/wdis.2018.12.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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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라 하대의 명문장가 겸 명서가인 최치원이 지은 사산비명 서풍의 특징을 찾아보고 글씨의 비교를 통해 그것들이 차지하고 있는 신라 서예사에서의 위상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신라에서 선종이 크게 유행하던 9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전반에 걸쳐 건립된 사산비명은 선사비 3점과 사적비 1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자는 최치원, 최인연, 그리고 승려 혜강인데, 최치원은 두 비의 글씨를 썼다. 서체는 모두 해서인데, 거기에 행서의 필의가 있는 것은 법에 구애됨이 없는 선종 또는 선사들의 사상과도 연관이 있다.
최치원이 31세에 쓴 <진감선사비>(887)에는 패기 넘치는 힘참과 자유분방함이 있고, 9년 후 40세에 쓴 <숭복사비>(896)에는 차분하고 절제된 자신감과 강직함이 있다. 최인연이 42세 이후에 쓴 <낭혜화상비>(909~924)는 유연함과 굳셈이 혼재되어 있으며, 혜강이 말년인 83세에 쓴 <지증대사비>(924)에는 노경의 완숙미와 노련미가 있다.
최치원의 글씨에는 신라에서조차 자신의 포부를 펼칠 희망이 없자 은자의 삶을 택한 그의 강직한 성품이 드러나 있고, 최인연의 글씨에는 개명까지 하면서 고려에서 지위를 얻고 문명을 떨친, 변화에 대처하는 그의 적응력과 융화적 성품이 녹아 있다. 혜강의 글씨에는 書와 刻을 동시에 연마한 40년 이상의 노련함이 있다. 이처럼 각 서자가 개성을 지닌 자가풍을 창조함으로써 사산비명은 신라 하대부터 나말까지의 서예사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나아가 신라 서예문화의 토착화에 크게 기여했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사산비명의 개요와 내용
III. 사산비명 서풍의 특징
I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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