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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고문서학회 古文書硏究 古文書硏究 제56권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19 - 15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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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정조대 무반으로 출사하여 외임 수령을 역임한 영광 출신 정호남이라는 인물의 가계와 관직 활동에 대한 사례 연구이다. 정호남이 어떠한 배경에서 무신의 진로를 선택하였고, 무과 급제 이후 정호남의 구체적인 행적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정조대 무신으로 활동한 정호남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반적으로 파악해 보았다. 정호남과 관련된 고문서 자료는 영광군 불갑면에 정착하여 세거하던 영성정씨 훈련공파 집안에 전래된 것이다. 그동안 문신에 비해 무신 관련 고문서 사례가 많지 않았으며 무신에 관한 연구 또한 저조한 상황에서 정호남 관련 고문서의 발굴은 사례 연구 자료로써 유의미하다고 여겨진다. 정호남의 경우, 기존에 관찬사료 등에 이름만 등장하던 정조대 무신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역사적으로 존재한 인물이며 정조대 무신으로 활동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고문서 사례가 발굴됨으로써 무신 관련 사례 연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정호남의 선대는 세종대 공신을 배출한 가문으로 임진왜란 때에는 출사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직계 선조와 친인척들이 함께 의병으로 가담하여 활약한 충절 집안이다. 이를 계기로 일부 후손들은 음직으로 출사하기도 하였으나 크게 현달한 인물은 없었다. 그러다가 정호남이 영조 말년에 무과에 합격하였고 정조대 무신으로 활동하면서 외임 수령으로까지 진출하였다. 정호남의 이러한 행적은 집안은 물론 향촌 사회에도 적잖은 영향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정호남이 어떤 이유로 무과 진출을 결심하였는지에 대해 참고할 만한 내용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그의 출신 배경과 집안 내력으로 보아 호남절의록등에도 수록될 만큼 지역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은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직계 선조는 임진왜란 이후 4∼5대를 거치도록 음사로 출사하거나 은거한 이력뿐 과거에 합격하고 중앙으로 진출하여 활동한 선조는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호남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은 그리 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가문의 위세나 경제력이 크게 뒷받침되지 못한 상황에서 무과를 선택한 이유는 경상도 출신 노상추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호남 역시 노상추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정호남은 무과 급제 이후 초사직에 나아가기까지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포폄계본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정호남은 상당히 부지런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함경도 변장직을 무사히 마치고 出六하였고 이후 453일(약 1년 6개월) 동안 수원 화성을 축조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3품 당상관의 품계에 올라 외임 수령으로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이는 정호남 개인의 역량과 기량은 물론 노상추 사례와 같이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약한 집안의 이력과 인적 관계망, 그리고 정조의 특혜가 조금은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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