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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제연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71輯
발행연도
2020.4
수록면
101 - 140 (40page)
DOI
10.31335/HPTS.2020.04.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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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인조반정을 주도하며 정계를 장악한 서인계는 1600년대 후반에 벌어진 송시열(宋時烈)과 윤증(尹拯)의 회니시비를 정점으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충청지역은 노론의 영향력이 막강하였고, 소론이나 남인은 비주류에 속했다. 특히 조선후기 노론 정권이 지속되는 동안 소론은 더욱 위축되었다.
충청우도 서원의 성격을 분석해 보아도 소론 서원은 매우 드물다. 그중 홍주의 용계서원(龍溪書院)은 윤증을 제향한 사액서원으로 주목되는데, 건립 과정에 청양 재지사족이 주도적으로 등장한다. 서원의 위치가 청양현 내에 속한 홍주의 월경지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특히 함평이씨가의 역할이 주요했다.
함평이씨는 선조 말엽 소북파 정치인이었던 이효원(李效元) 이후 번성하였다. 특히 그의 아들과 손자들이 朴知誡의 문인이면서 서인계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였다. 노소분기 이후에는 소론을 표방하였고, 자손들은 인근 소론 집안과 혼인을 통해 정치적 성격을 공고히 하였다. 용계서원이 정치적으로 수난을 겪었지만 조선후기 내내 지역의 지배성관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1700년대 후반 이후로는 사마,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정치적 성격을 드러낼 기회 없이 노론계로 성장한 외손 집안과 교류하는 등 문중활동에 부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시기 충청지역 비노론계 집안이 대개 같은 상황에 처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함평이씨 함성군파의 청양 세거
Ⅲ. 정치적 활동과 소론가로의 좌정
Ⅳ. 향촌활동을 통한 소론가로의 기반 강화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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