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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성현 (계명대학교)
저널정보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한국학논집 한국학논집 제77집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7 - 3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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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기존에 주목하지 못했던 자료들을 포함하여 진흥왕대 이후 신라 동북경계의 변천에 대해서 다시 정리하고, 경계의 구체적인 구조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진흥왕대 신라가 함흥 일대에 진출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진출 방식과 후퇴 시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본고에서는 신라가 고구려와의 화약을 통해 이 지역을 양도받아 동해안을 따라서 점령해 들어간 것으로 보았으며, 570년대 초 고구려와 왜의 교류 기사를 바탕으로 고구려가 568년 직후 이 지역을 회복한 것으로 본 견해를 비판하였다. 『일본서기』의 해당 기사는 정식 사절의 교류보다는 동예 지역민의 표류, 동예와 越 지역 사이의 교류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1960년대 초 북한에서 조사된 함경남도 지역의 신라 성지 및 고분군을 바탕으로 신라가 이 지역을 상당기간 영역 지배하였음을 밝혔다. 신라가 이 지역을 상실한 것은 655년 고구려와 말갈에 의한 北境 33성의 탈취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신라가 이 일대 중 안변 지역을 다시 회복한 것은 기존의 논의와 같이 666년 연정토가 12성을 들어 항복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그렇지만 나당 전쟁기에 다시 이 지역을 상실하였는데, 681년에 비열홀과 천정군을 확보하고 721년에 북경 장성을 쌓으면서 경계를 확정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와 같이 만들어진 경계의 구체적인 구조에 대해서 고찰해 보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덕원도호부조에 보이는 ‘철관역’과 ‘철관’, 그리고 일제 시대에 조사된 덕원 북쪽의 장성 유적에 주목하였다. 즉 이들을 각각 ‘탄항관문’과 ‘북경 장성’으로 추정하였다. 그렇지만 신라와 발해의 경계인 ‘니하’는 이보다 북쪽인 금야강(구 용흥강)으로 파악했는데, 즉 관문과 경계, 다시 경계와 발해의 관문 사이에 일종의 완충 지대가 존재한 것으로 보았다.

목차

1. 머리말
2. 진흥왕대 함흥 일대로의 진출과 영역화
3. 태종무열왕대의 후퇴와 문무왕대의 재진출
4. 경계의 구조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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