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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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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27권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 - 38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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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대 가야 방면과 관련하여 입석된 「창녕비」는 다른 진흥왕순수비와는 달리 성격과 목적에 있어 해석이 분분하다. 이는 비의 전반부가 상당수 마모되어 해석이 여의치 않고 비문의 내용이 교의 하사와 관련해서 주로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에는 「창녕비」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보다 가야 방면에 대한 신라의 진출에 있어 보조적인 자료로 활용하였다. 하지만 「창녕비」는 순수비의 성격을 지니면서도 교의 반포라는 행적이 강조되고 각지의 군주가 한 자리에 모였다는 독특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는 「창녕비」가 가야 방면과 신라의 상호관계 속에서 특정한 목적 하에 입석되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특히 「창녕비」에 기재된 진흥왕을 수가했던 이들은 신라가 새롭게 차지한 영역의 지방관이 상당했다는 점에서 지방통치와 연관된 사안을 추론해볼 수 있다. 진흥왕 시기를 전후해서 가야 방면을 둘러싼 백제와의 대립이 있었지만 관산성 전투의 승리 이후에 신라는 대가야를 포함한 가야 방면에 대한 적극적인 진출을 단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제기된 것이 재지사회의 새로운 권력관계 재편과 함께 안정적인 통치체제의 정비라는 과제였다. 이를 위해 진흥왕은 신라와 왕에 대한 충성을 매개로 한 토지 분배를 통해 재지사회를 새롭게 재편하고, 왕과 더욱 밀착하게 만드는 구조를 형성하여 재지사회에 대한 통치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진흥왕의 조치에 대하여 가야의 재지 지배층들이 반발한 것이 ‘加耶叛’이라는 사건이다. 이에 대하여 진흥왕은 대규모의 군사를 파견하여 일시에 진압함으로써 가야 방면을 재편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창녕비」는 가야 방면 재지사회 권력의 재편이라는 지방통치와 관련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비라는 점이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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