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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정 (진주교육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70輯
발행연도
2019.11
수록면
193 - 238 (46page)
DOI
10.31335/HPTS.2019.11.7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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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숙종 초에 진행된 明史 辨誣의 과정과 목적, 조선 정계에 미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명사 변무는 현종대 인조반정이 ‘簒逆’으로 기록된 서적이 확인된 데 따라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조선조정은 현종과 숙종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3차례의 변무사를 파견하여 『明史』에 조선의 입장을 관철하는 성과를 내었다.
이 과정에서 신하들은 종계변무와 성격이 다르다거나 청에게 변무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수치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반대하였다. 하지만 청에서 발생한 三藩의 반란으로 조선 정부는 정보의 확보가 절실하였고 변무사행을 통해 반란의 동향을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하게 파악하였다.
그런데 변무는 당초의 목적과 별개로 조선 정계에 변무를 주도한 인조의 직계인 복창군 형제의 제거와 숙종의 모친인 大妃 명성왕후의 정치적 위상 강화라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복창군 형제의 외교활동은 조선과 청을 연결하는 창구로 활동한 아버지 麟坪大君의 역할을 이어받은 것으로, 어린 시절부터 궁궐에서 성장하여 현종·속종과 친밀도가 높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삼번의 반란이 진압되고 청의 체제가 안정되자 이들의 존재는 효종 이하의 국왕들에게 종통상의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에 숙종은 福善君을 추대하려는 역모가 발각되자 형제들을 모두 제거하는 한편 이들과 교류하였던 남인들을 정계에서 축출하는 경신환국을 일으켰다.
숙종의 처분은 즉위 직후 공개적으로 나서 복창군 형제가 궁인을 임신시켰다는 비행을 밝히며 이들을 제거할 것을 촉구한 대비의 행위가 종사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명분을 부여하였다. 이에 따라 송시열 등 신하들은 물론 숙종까지도 대비의 처분을 따른다고 천명할 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당초 대비가 직접 정치에 개입하는 데 대한 부정적 신하들의 입장은 명사 변무를 통해 인조반정 사적이 확증되는 것과 함께 수그러들었다. 인조반정 당시 인목왕후는 國人이 추대한 인조를 權署國事로 공인하고 명에 책봉을 요청한 주체로서 인조의 즉위가 찬탈이 아님을 입증하는 존재였다. 이러한 인목왕후의 역할은 숙종을 보위하며 왕실을 지킨 주체로서 명성왕후의 정당성을 역사적으로 합리화하는 것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辨誣의 과정과 肅宗의 역할
Ⅲ. 辨誣의 성격과 三藩의 반란
Ⅳ. 辨誣의 영향과 大妃의 위상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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