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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정 (진주교육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74輯
발행연도
2021.4
수록면
137 - 190 (54page)
DOI
10.31335/HPTS.2021.04.7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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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숙종 후반 처음으로 진강된 명사에 대한 인식을 『황명통기(皇明通紀)』를 매개로 살펴본 것이다. 명사가 사서(史書) 진강의 대상이 된 것은 당대사의 범주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조선 조정이 공식적으로 明이 멸망한 과거의 왕조임을 천명하는 것이었다. 『황명통기』는 명대 당대사로 편찬된 직후 조선에 유입되었는데, 이에 대한 인식은 비판적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임진왜란 후 명의 전례(典禮)가 강조되고 명 사적을 이해하는 전거로 활용되면서 변화하였고, 숙종대 진강교재로 채택되었다. 명대 사적 중에서 현안과 관련하여 논란이 되었던 것은 명 세종(嘉靖帝) 때 있었던 사친(私親) 추숭(追崇)이었다. 『황명통기』는 저자인 진건(陳建) 당대에 있었던 추숭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광해군과 인조가 명의 사적을 명분으로 사친을 추숭하여 현종대까지도 이에 대해 비판적인 기조가 이어졌다. 하지만 숙종은 역사적 전례를 매개로 원종 추숭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제기하는 신하들에게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에 따라 인조 왕계의 시원으로 가지는 원종의 위상이 정립되고 추숭에 대한 부정적 입론이 약화되었다. 이와 함께 건국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던 명 태조(洪武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병자호란 후 북벌(北伐)과 권농(勸農) 등 긍정적인 요소가 지적되곤 하였지만 형정(刑政) 운영 등을 매개로 비판적인 인식이 유지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숙종대 들어 명 태조의 권농정책과 예제정비를 매개로 긍정적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숙종대 당시 북벌(北伐)을 폐기하고 내수(內修)를 위한 정책을 실시하는 정책기조의 전환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숙종대 사서(史書) 진강과 명사(明史) 교재
Ⅲ. 명 사적의 재인식과 활용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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